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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6호 11면    2017-05-24 10:18:39 입력
[건축을 보다] ㊳ 영화도시 부산 - ‘영화 속 그 곳, 부산의 건축물’
이경섭 매니저()

11p 상단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매니저 이경섭.jpg

이경섭 팀장은 부산 출신으로 영화 현장 20년차, 국내 여성 로케이션매니저 1호이다. 영화 도시 부산을 홍보하고, 국내·외 장편극 영화 및 드라마 CF, M/V 200여 편의 촬영을 지원했다. 항구도시, 초고등 빌딩이 병풍처럼 늘어선 해운대의 마린시티, 광안리, 남포동, 자갈치 시장과 을숙도의 갈대숲이 전부인 줄 아는 영화인들에게 부산의 토박이도 잘 모르는 깨알 같은 장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시나리오와 장르에 따라 영화의 도시에 빠져 영화처럼 영화 속을 누비며 산다. 영화도시 부산을 스크린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꿈이며, 영화 촬영현장이 놀이터이자 주 무대로 하는 행복한 영화인으로 현재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장을 맡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 배경이 되어야 할 건물, 건축물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은 냉기 가득한 공간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 넣는 일, 다양한 이야기 속에 담쟁이 넝쿨처럼 켜켜이 시간을 쌓아가는 것, 짓누름이 아닌 진정한 교감을 통한 머무름이다. 때론 미처 이해할 수 없는 메타적 건축물들은 이용자에게 지극히 절제된 감정을 요구하고 권위와 낯섦으로 달갑지 않게 환대할 때도 있다. 건축물의 핵심은 공간이다. 날로 확장된 외연으로 도시와 사람 사이에 피곤함은 점점 가중되어 가고, 군더더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지나친 절제미에 대한 생경한 경험은 결국 현실 속 각자의 경험과 정서와 균형을 이룰 때 마침내 건축물의 고유한 기능과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단순히 기능에 대한 감각만으로는 익숙함과 편리함에 길들일 뿐이며, 개인의 삶에 대한 정서와 감각만 있을 때는 오히려 지루함을 만든다. 거기에는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자신만의 스토리 즉, 그로 인한 유머를 찾아야 한다. 유머와 교감은 건축물(공간)을 마주하는 개인적 경험이 자신의 정서와 맞닿을 때, 그 바라보는 유쾌함으로 따뜻하게 데워질 때 생겨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내가 있는 그곳은 심오해지며 가치가 더해진다. 

부산은 영화 도시다. 세계적인 영화축제인 부산국제영화제 22년 차, 더불어 국내․외 영화 촬영지로 주목을 받아온 지도 곧 스무 해가 되어간다. 부산의 도시 이미지를 영화 속 시나리오에 투영해 영화 <도둑들>, <해운대>, <변호인>, <국제시장>, 최근 <부산행> 같은 천만 관객의 영화 9편이 부산에서 촬영되었고, 일 년 365일 촬영으로 부산하다.
여기에는 산과 바다라는 지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스토리와 비주얼이라는 두 축으로 완성된 영화라는 상품에 없어서는 안 될 다양한 건축물들이 등장하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공간은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정을 불러온다. 이들의 발걸음이 지속해서 부산을 향하는 이유다. 어느 도시인들 아름답지 않을까… 배우 톰 크루즈와 왕자웨이 감독의 부산방문, 미국 블록버스터 마블사의  영화 <블랙팬서>가 광안대교와 자갈치시장, 사직구장 주변을 휩쓸고 간 이유는 도시를 둘러싼 자연풍광과 인공적인 건축물이 어우러져 만든 낯선 문화와 개인의 고유한 정서가 은밀하게 만나 큰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은 첫사랑의 아름다운 추억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관객의 머릿속에는 김동률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맴돌고 마음은 어느새 제주도 해안가 노을이 드리운 카페 서연의 집에 머문다. 영화 속 한가인과 엄태웅이 나란히 누워있던 2층의 잔디는 기억의 회귀로 우리의 첫사랑을 찾아주고,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일방적인 즐거움과 슬픔 사이를 종횡무진이게 한다. 이는 영화라는 기억을 통해 건축물에 다가가는 감정과 의미의 고유한 상호관계다. 영화 속 공간은 개개인의 기억이고 감정이다. 

주례여고는 진구 주례동에 있다. 그곳 주변은 삶의 다양한 이야기가 널려 있다. 학교 정문 앞 다세대 주택단지는 영화사에 길이 빛난 한 줄 어록인 “너나 잘 하세요.”를 남긴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열흘 넘게 촬영한 유명한 곳이다. 그곳의 다세대주택이 갖는 색채와 동선이 주는 영화적 의미를 진하게 우려내, 감독 박찬욱 그 이름에 방점을 찍었다. 눈 내리는 골목길, 가로등 불빛 사이로 총을 든 금자가 광기에 사로잡혀 걸어가는 시퀀스이다. 이후 박찬욱 감독은 부산의 마니아가 되었고 그의 모든 영화에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다양한 얼굴로 등장한다.

내 직업은 영화 시나리오를 분석한 후, 감독이 요구하는 지극히 개별적인 정서를 이해하고 최종적으로는 제작예산에 맞는 장소를 선택, 추천하는 일로써 로케이션매니저로 불린다. 대개 영화나 드라마, CF, M/V 등의 제작에 참여하는 일이다. 하여, 내 시선 속의 건축물이란 외형뿐 아니라, 동선에 따른 나선형 계단 하나, 출입구나 진입로의 모양 하나, 색감이나, 시대적 배경이 매우 중요하게 해석된다. 공간은 기능별 장르별로 분류되고 구별 카테고리에 담겨 영화인들에게 전달된다. 보는 것,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스토리를 따라 의미를 찾아내고 만들어 가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일은 내게 사물과 공간을 이해하고 관찰하는 데 있어 훨씬 더 폭넓고 가치 있게 해 주는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부산의 대표적 건축물의 하나인 해운대구 센텀에 위치한 ‘영화의 전당’이나 ‘광안대교’는 부산의 랜드마크로서 전당의 경우, 건축물 자체의 다양한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오히려 시각적인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두드러져 주․야간 쉴 새 없이 영화 등 CF, M/V를 촬영하고 있다. 전당의 지붕인 LED조명의 영상을 구현하는 빅루프는 세계 최장으로 스몰루프와 함께 기네스에 등재되었다. 아울러 신선대 부두로 이어져, 물류의 수송량을 늘리고 시간을 단축하는 기능적 역할을 함과 동시에 다양한 미학적 요소들이 있는 광안대교는 상판 현수교의 여성미와 하판 철골의 강인한 남성미가 해안의 초고층 아파트와 어우러져 시시각각 투사하는 빛의 양과 계절 그리고 날씨에 따른 변화무쌍한 이미지로 전 세계 자동차 브랜드의 CF 광고와 영화들을 쉴 새 없이 불러들이고 있다. 

건축물이 어느 로케이션(현장)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때때로 다른 기능에 영향을 주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람이 공간으로부터 위로받고자 한다. 거리의 수많은 커피숍에 반드시 커피를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때때로 우리는 따뜻한 주홍빛이 감도는 가로등 아래의 계단이 그리울 때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 건축물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인간을 닮는 곳이기에 가장 따뜻한 곳이기를. 그곳이 화장실이든, 계단이든, 옥상이든, 작은 모퉁이라도 화려함 짓누름이 아닌 오래오래 마음에 평안함을 줄 수 있는 치유의 기능도 가진다면 너무 이상적인가. 모쪼록 비전문가의 비현실적인 바람일지라도 좋은 건축물이란 시대가 원하는 정서를 이해하고 인간에게 위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11p 4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배경.jpg

그림 : 영화 <친절한 금자씨> 당시의 주례동 주택가 전경

이경섭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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