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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4호 11면    2017-03-27 16:36:47 입력
[건축을 보다] ㊱ 전망 좋은 방
정지영 화가()
11p 상단 정지영 작가.jpg정지영 약력 : 정지영 화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돌아와 현재 부산에서 살고 있다. 2012년부터 돌멩이를 모티브로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다양한 삶의 몸짓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Never Ending Story / artspace Baku 2016 우리 사이, / 미광화랑 2015 , , 사람들 / 갤러리 담 2013 7회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또따또가 레지던시’ 3기 입주작가로 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영화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은 주인공 루시가 피렌체 여행 중 묵게 된 호텔 방 창문을 열어 보고 크게 실망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울해하던 루시는 호텔 식당에서 자신들의 전망 좋은 방과 기꺼이 바꿔주겠다는 에머슨 부자를 만나면서 활기를 되찾는다 

나 역시 루시 못지않게 실은 그보다 더 창문에 대해서 예민하다. 집이나 작업실은 물론 짧은 기간을 머무르는 여행지에서 호텔 방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간 뒤 내가 하는 일은 언제나 똑같다. 문 안쪽에 가방을 세워두고 창가로 간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히고 실내에 빛이 얼마나 들어오는 지를 살펴본 다음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시야를 체크한다. 이 과정은 짧지만 나는 마치 이 여행의 운이 모두 여기에 걸려있다는 듯이 긴장해서 주의를 집중한다. 행운은 절반 정도의 확률로 찾아왔던 것 같다. 창밖에 앞 건물 벽이 눈앞을 가로막거나 어지러운 배관과 환기통이 보이는 암담한 시야를 만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주저 없이 로비로 내려가 온갖 사정을 늘어놓으며 기어코 방을 바꾼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만족스런 빛과 시야를 얻고 나면 나는 그제야 창가 의자에 앉아 천천히 가방을 풀면서 낯선 곳의 새로운 풍경을 만날 준비를 한다. 내 방 안에서 눈이 먼저 편안해져야 마음이 열리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가 빛에 대해 유독 예민해지고 창문에 집착하게 된 것은 아마도 파리 유학시절 해를 보기 힘든 흐리고 긴 겨울을 겪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날씨와 계절에 민감한 편이었던 나에게 흐린 회색빛이 옅어졌다가 짙어지는 하루가 반복적으로 이어지던 파리의 겨울은 매우 견디기 힘들었다. 그 즈음에 우연히 파리 어느 극장에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빛에 대한 향수가 몰려와 울컥 눈물이 났다. ‘아 저거였지, 한국의 빛은. 따뜻하고 진한 노란색!’ 그 후로도 겨울이면 어김없이 향수병을 앓았고 나는 그때마다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을 소환하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적지 않은 도시를 옮겨 다녀야했던 내가 부산에 내려와 생활한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 사이 작업실을 네 번 옮기게 됐다. 그때마다 나는 빛과 창문을 찾아 수많은 방들을 보고 다녔다. 새로운 작업실을 찾아 안착하는 일은 내게 전시를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어서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었다. 이제는 기호가 선명해지면서 내가 원하는 전망을 얻기 위한 선택과 결정이 빨라졌다. 반투명 재질의 천과 종이를 덧대거나 대나무 발, 블라인드를 활용해서 실내에서 빛과 시야를 조절하고 보완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바깥 풍경이 그리울 때는 가능한 모든 창을 열어두고 방 한구석에 편한 의자 위에 비스듬히 누워 한나절 제각각 다른 창 위에 빛이 그리는 그림을 감상한다. 생각을 내려놓고 휴식이 필요하다면 반투명 커튼이나 블라인드만 내려 시야를 지우고 실내에 엷은 빛을 가득 채운다. 구상스케치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실내조명을 보태고 시야는 절반만 열어둔다. 야행성이라 밤과 새벽사이 본격적인 작업을 할 때는 모든 창을 닫고 FM라디오를 켜놓은 채 파란 형광등 아래 하얀 캔버스를 마주한다. 이제는 창문이 아닌 캔버스 위에 또 다른 빛을 밝혀야 할 순간이 온 것이다.

11p 4 니스의 호텔방 2002-2009oil on canvas_ 116 x 89 cm.jpg 니스의 호텔방 ㅣ 정지영 作 2002-2009

2017-03-27 16:36:47 수정 정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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