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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0호 2면    2016-11-22 14:35:39 입력
[시론] 자연스러움
유방근 교수()

가장 자연스러운 건축이 가장 좋은 건축이다.

그 도시에, 그 마을에, 그 환경 속에 잘 녹아드는 건축이 우리가 해야 할 과제란 것은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생각일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익숙한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톱질이 익숙지 않은 자가 톱으로 나무를 자른다면 서툴기 짝이 없을 것이고 오히려 위험하기까지 하여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할 것이다. 이 불안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계속 톱질을 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작위적일 것이다. 우린 이런 작위적인 건축을 통해 불안을 항상 느끼면서 지내온 터라 그것에 익숙해져 오히려 안심이 된 듯 무뎌졌다.

사회와 건축이란 말을 자주 써오곤 하는 지금, 여기서 사회란 무엇인가?

건축인이 되기 위해 법규와 경제 등 현사회의 건축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다. 최소한 여기서 사회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우리의 삶과 그 삶을 위한 물리적 테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문학적 사회와는 약간의 구별이 된다고 본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과 건축이라 이해하기 쉽게 대치할 수 있다. 건축은 항상 자연과 인간 사이의 완충적, 보완적 공간이 아닌가!

 

비할 수 없는 대자연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작고 여린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둘의 관계를 건축이란 자연스러운 완충적 공간을 통해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여럿 모이면 마을이 되고 도시가 되어, 산과 강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의 보완적 물리적 테두리를 만든다. ‘인간을 위하여.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건축은 산과 강을 끼고 땅과 하늘 사이에 익숙한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할 경우 우리의 삶이 닮긴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초등학생에게 마을의 집들 가운데 자신의 집을 지으라고 한다면, 앞뒤 옆집을 먼저 살펴본 후 자신의 집을 생각할 것이다. 그 다음, 집의 형태를 자신이 좋아하는 삼각, 사각, 원의 형태로서 만들 것이다. 그러나 기성 건축사들은 아마도 순서가 반대일 터. 많은 경험의 익숙함이 자칫 자연스러움의 익숙함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2003, 관심 있는 세계작가들의 국제공모전이 있었다. 그것은 백남준 기념관이었고 많은 세계 건축사들이 참여했으며, 서울 평창동 토탈 미술관에서 출품작을 전시했다.

당시 80여개의 작품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한 작품이 있었다. ‘The Matrix’라 명명한 독일의 젊은 건축사 키르스텐 쉐멜(Kirsten Shemel)의 작품이었는데, 그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작품들은 자신을 나타내려고 화려한 언어를 구사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괴성까지 지르는데 유독 그 작품에는 자신이 없었던 것.

당시 주어진 대지는 경기도에 위치한 구릉지였는데, 작가는 그 대지에 마치 주변을 담는 그릇처럼 댐 형태의 매스를 건설하고, 안에 물을 부은 듯 나머지 대지에는 등고선 라인을 따라 채워진 형태의 매스계획을 선보임으로써 대지가 곧 매스가 되고 매스가 곧 대지(주변 환경)가 되었다. 이처럼 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이고, 굳이 도인 노자의 사상이 아니더라도,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아름다움일진대, 현재 그 자리에 놓인 건축물은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있다. 귤이 탱자가 된 셈이다.

물론 건축행위는 이미 무언가를 하고 난 다음의 결과물이기에 -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그 자연스러움이 필요하다.

 

익숙한 목수의 톱질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은 하지 않는 것이다. , 톱질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톱질을 함으로 자연스럽게 나무는 잘린다. 그러니 익숙함은 많은 양과 질로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양은 배움의 장소에서부터 시작이고 그 질은 양이 넘칠 때 나을 수 있다고 본다. 자연이란 대상에 익숙해지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또 그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가 되었을 때 그 익숙함의 끝을 볼 수 있다. 마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Cap Martin의 오두막으로 생의 마감이 되는 자연스러움처럼 말이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양과 형편없는 질을 감추기 위해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행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의 반대는 인위이며, 이러한 인위적인 것은 시골과 도시를 놀이동산으로 전락시키며 한 끼면 족한 식당의 화려한 요리인 것이다.

 

이제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건축이 다른 사람을 위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명백해 보인다.

문득, 신영복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 생각난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2016-11-22 14:35:39 수정 유방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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