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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0호 15면    2016-01-26 13:15:05 입력
[타박타박] ㉘ 양동마을, 그 시간의 더께 너머
ab이종민 건축사 |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이종민 건축사(j7139@hanmail.net)

 

프롤로그

의외의 장면을 만난다는 것이 여행에서 얻는 진짜 행운이 아닐까 한다. 삶이 터를 이루던 곳에는 시간의 더께가 쌓였게 마련이다. 다시 가본다는 것도 추억의 장면을 떠올리려는 감정의 회유(回流)가 아니라 엄연히 존재할 현재라는 시간과 맞대하려는 적극적인 행위여야 한다. 잠시의 감흥으로 앞으로의 태도가 모색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창의적인 일인가.

 

양동마을

같이 간 사람들은 이번 여행에 감동하였지만 정작 양동마을을 추천한 나는 당황하였다마지막으로 들렀던 것이 30대 중반이었으니 20여년 마을의 변모에 무척 놀란 것이다. 무엇보다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이 큰 이유일 것이며, 그에 걸맞게 양동마을이 관광지로서의 필연적·보편적 모습을 갖추고 있음이 그랬다. 그걸 긍정해야 하느냐 부정해야 하느냐는 마치 동전의 양면이 동시에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논쟁이다. 건축은 늘 그러한 논쟁 속에서 다루어져  것이었으니, 그동안 건축사로서 나의 입장도 제법 느긋해졌다고나 할까.

 

▲ 양동마을 문화관

 

'양동마을 문화관'이라는 종합통제실 같은 건물이 홍보·관리와 관람료 징수를 목적으로 초입에 수문장처럼 사람을 맞는 것이 제일 큰 변모다. 양식에 대한 논란이 꽤 있었다지만 여타의 전통유산들처럼 마땅히 한옥의 형태여야 한다는 보수적 입장을 극복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색채와 재료를 순화하고 주위를 복토하여 땅에 묻힌 형태를 구사한 점은 마을에 비하여 도드라지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많은 학자들과 위정자들의 간섭이 있었을 테니 힘들게 절충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톳길이 콘크리트길로 바뀐 점도 기억과 다른 점이었으나, 마을이 여전히 현재를 사는 이들의 생업터전이니 긍정해야 할 부분이다생활을 무시해야 할 만큼 가시적 유산이나 문화가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 평소의 내 생각이었다. 실제로 그 길에는 자동차도 있고 트랙터도 있었으니, 나의 아쉬움은 다만 추억으로 존재해야 마땅하다. 그나마 이 마을이 이미테이션으로 이루어진 '민속촌'이 되지 않았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마을은 관광객들의 활기찬 모습으로 붐비고, 초가의 한켠에서는 짚 이엉을 얹는 작업이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었다. 관광과 생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농부에게 물었다. "저 초가집 이엉 작업은 시()에서 보조하는 겁니까?" ", 경비는 시에서 나오고 일은 우리가 해요." "지원이 살림살이에는 좀 도움이 됩니까?" ". 마을의 살림은 이전보다 풍요로워졌어요. 그렇지만 옷 한번 훌러덩 못 벗고 툇마루에 낮잠 한번 옳게 못 드니 우리의 삶도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라오." 농부의 실소가 여느 '벽화마을' 주민의 불평과 다름없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삶이라는 명제 앞에 정당한 것은 무엇인가?

 

양동교회

자칫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대한 몸을 웅크린 작은 예배당이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려는 자폐아적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내가 아니길 바라오." 건축은 내게 그런 말을 한다. 혹 드러나지 않음으로서 더 드러나려는 것이 더 세련된 방식임을 노렸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런 불순한 의도로 보이지 않음은 집을 설계한 김헌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다.

 

▲ 양동교회 진입부

 

작고 어둡고 단순하다. 형태도 그저 땅의 흐름을 닮아 위세가 없다.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유일한 도구는 이전의 근대식 교회를 이루던 종탑일 뿐이다. 벽도 아니고 지붕도 될 수 없는 모호한 건물의 형태는 땅으로 스미는 것인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인지 짐작키 어렵다세로로 붙인 검은 전타일이 주조인 재료 또한 칙칙하여 건축은 더욱 주변의 조경수 속으로 숨어든다. 보일 듯 말 듯 한 창은 빛을 향하여 당당하게 맞서지 않고 숨고 숨어, 겨우 들어오는 선큰의 미미한 빛만을 수용하려는 듯 더욱 소극적이다애써 드러나지 않으려는 건축임에 분명했다

교회는 현재의 공간이다특히 현대 교회는 본래의 엄숙함을 초월하여 어떤 건축보다도 더 현실적인 공간이며, 따라서 처음부터 기능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수반해야 한다. 드러남과 빛이 이루는 장엄과 위세는 무시 못 할 것 아니었겠나더욱이 이 경우와 같이 기존의 교회를 재건하는 과업이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할 공산이 크다. 하물며 모든 건축가들에게 자신의 건축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야 함은 숙명적 트라우마다. 자신을 꽤 잘 드러내는 걸출한 작가 '김헌'의 몇몇 건축을 익히 보아온 나로서도 이번만큼은 드러나지 않은 건축을 만든 건축가의 속사정을 속단키 어렵다

교회는 왜 이다지 소극적으로 움츠린 모습을 하고 있을까건축의 존재함은 어디로부터 출발하는가? 설계자의 인식으로부터인가? 아니면 여타의 여건으로부터인가? 인식과 조건의 갈등, 나아가 둘의 투쟁. 그렇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타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 우연히 부딪힌 '양동교회'가 내게 던진 질문이다.

 

▲ 이전 교회의 종탑

 

작가 김헌이 개별의 건축이기보다는 토양의 일부로서 집을 인식했다면 말이 될까? 동일 선상에 섰다면, '안도 다다오''마리오 보타'와 같은 외국의 대가들이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는 안태로서의 토양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애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문제가 된 것은 처음부터 '양동마을'이라는 외연의 조건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있었다하더라도 조건에 대하여 의외로 단호했을 것 같다. 이곳이 '양동마을'이며 '세계문화유산'이었으므로 분명히 전통과 현대라는 양면에 부딪혔을 것이다. 곁에 있는 양동초등학교 건물의 예를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초등학교 건물은 규모가 '병산서원' 정도의 크기를 훨씬 초과했으므로 기와를 얹은 지붕과 콘크리트 벽에 삽입된 연속된 창의 모습이 기괴하다이와 같이 시각적 전통을 강요하는 건축문화에 대한 투쟁이 보인다고나 할까?

그 다음으로는 의뢰자와의 필연적 절충이 따랐을 것으로 짐작된다대체로 자본과의 타협 또한 한 건물의 무난한 존재를 위하여 겪어야 하는 숙명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 타협을 유리하게 끌고 가지 못한다. 설령 유명한 작가라 하더라도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건축이 차라리 보이지 않는 지하로 숨어든 것에 수긍이 간다. 건축은 늘 여타의 잡스런 조건들부터 존재해야 함이고그걸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욱 너른 자세였을 것이다. "그게 그리 중요하다면 내가 숨어들면 될 것 아니오?" 단순한 타협이었으리라. 좋게 말하면 조건을 해치지 않는 절묘한 타협이며, 아쉽다고 말하면 개별 건축의 존재감이 미약해 진 것이다그럼에도 건축은 종합적으로서 절충되어야 했을 것이다. 좋은 작가가 그 매개가 되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 교회의 우측면

 

▲ 교회의 전경

 

건축의 존재함과 시간

'양동마을'의 곳곳에는 팻말이 붙어 있다. 현세의 사람들이 손중돈과 이언적의 축조 기록을 읽으며 상상의 골목골목 거닐고 있다. 이즈음 김헌이 말했던 "건축은 시간을 견디는 작업이다."라는 의미를 새겨봄직하다. 후세에 양동교회에 팻말이 붙는다면?

양동교회 /  시절 '양동마을' 이라는 전통마을이 있었고, 사람들은 오래된 마을을 잘 보존하기 위하여 무척 노력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이 되면 삼삼오오 예배를 보러 모이곤 하였는데, 예배당을 크고 높게 지어서 전통마을의 경관을 해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교회는 좀 더 겸손한 모습으로 지었다.  작고 아름다운 흔적이 지금 남아있으니 잘 살펴보라. 그때 사람들의 살았던 정겨운 모습이다

 

우리는 종종 건축에 대한 과대망상을 하게 된다. 더욱이 건축이 관람의 대상이 되면, 그러한 오해는 극대화 된다. 유적이 그렇고, 기념적인 건물이 그렇고, 유명한 작가가 만든 소위 작품으로의 건축이 그렇다. 심지어는 헌집에 비하여 새집이 그렇기도 하다그러한 건축은 여타의 조건이나 타인의 삶을 예사로 무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잘된 것만이 건축은 아니라는 역설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모든 집은 건축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건축의 존재함에 대한 인식의 오류는 바이러스처럼 퍼져 도처에서 일어난다. 관광을 빌미로 삶을 파괴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역사는 혹시 이 시대를 이렇게 기록할 것은 아닌지? "한때 판잣집 마을에 벽화를 그려 놓고 관광객을 불러 모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판잣집 사람들의 삶은 자유를 잃었다. 동네 사람들의 아침 인사가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문을 꼭 걸어 잠그는 일이 비일비재해졌으며, 타지에서 들어온 장사치들이 돈을 벌기 위하여 마을의 터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땅 값은 천정부지로 솟아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사를 갔다. 그 이후에 그들은 다른 집으로 숨어들었는데 그 집은 말이 콘크리트 집이지 닭장과 다름없었다."

 

현재라는 시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얼까? '관가정'에서 내려다보면 모든 건축이 제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펼쳐진다. 과장되지 않는 삶의 모습이다기와집, 초가집, 교회당, 학교, 문화관, 어느 것 하나 양보되어야 할 것이 있을까? 때론 작가의 열망도 있고 타협도 섞인다. 건축의 존재 이유는 삶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여 양동의 기와집보다는 농부가 사는 초가집이나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당이 더 건축적이어야 한다. 벽화마을이라 하여 다를 게 없다. 그런 데에 기울이는 우리의 건축적인 배려는 얼마만 한가?

이즈음에 우리는 건축이 존재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드러내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부존의 존재함. 드러나지 않아도 존재해야 할 것이 건축이다.

 

에필로그

견지해야 할 창의적 태도란 공간보다는 시간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양동에 가면 늘 그 시간의 더께를 보게 된다. 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행운이라면 우연히 만난 드러나지 않은 교회당을 보고 그만 건축이 또 어려워진 것이다하지만 현재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인간을 사랑하라." 스승이 내게 가르쳤던 첫 명제로 돌아간다.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다.

 


이종민 건축사는 본지 제3대 편집주간이자,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부산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 부산시가 주최한 부산미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해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87년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이후에도 설계경기에 꾸준히 참여해 다세대주택 및 부산세관별관 설계경기에 당선되었으며, 부산시 종합연수원 및 철도시설공단 설계경기에서는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외에도 창원건축대상제에서 우수상과 장려상을, 동래건축문화상 우수상(2013)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건축사는 다음 블로그 심계의 공작소 http://blog.daum.net/j7139’를 운영하고 있다. 심계(深溪)는 부친이 정해준 호()로 그의 필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6-01-26 13:15:05 수정 이종민 건축사(j71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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