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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0호 14면    2016-01-26 13:02:17 입력
[수필의 향기] (10) 서성이는 달
한시영()

 

▲ 절터(이종민 건축사 |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탑은 발원이다. 발원은 간절함이건만 고도 속에 숨은 듯 자리한 천관사지 이곳엔 경주 곳곳에 있는 탑이나 무덤 하나도 없다. 서북쪽 남천 건너 지척에는 그토록 자신들의 사랑을 반대했던 만명부인이 살았던 재매정이 있고, 죽어서라도 그리던 임을 보고 싶어서일까. 멀리 산등성이에 김유신이 잠들어 있다.

 

천한 신분이란 죄에 묶인 모진 운명일까. 천관녀는 죽어서도 임의 무덤이라도 보려면 만명부인이 살았던 재매정을 거쳐야 했으니 돌무더기조차 뚜렷하지 않은 부드러운 흙속에 일렁이는 바람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인지.

김유신도 천관녀를 내려다보고 있음은 쓸쓸한 들녘에 바람으로라도 서성이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음일까.

 

쓸쓸한 빈터에 추욱 지나가는 더운 바람이 서슬퍼런 만명부인의 호령처럼 귓전을 스친다. 달빛 젖은 밤 명치 끝 저려왔을 사랑이 그려진다. 술은 한정 없이 마시나 결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유주무량의 도를 잊었음인가.

취정에 젖어 여인의 기품과 연모의 자태에 날 선 장부의 심장도 녹았을까. 탄복할 학식에 신분의 미천함을 잊었던 것일까.

 

열애에는 신분도, 조건도, 편견도 뛰어넘는 예측불가의 마력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만명부인도 오늘날 부모들처럼 출세 지향적이었는지 사모의 정분을 막으려는 호된 꾸지람은 강개한 장수의 의지도 발길도 막았다.

진한 연정은 만군을 호령하던 대쪽 같은 장수의 절개도, 매화향 같은 여인의 지조도 헤어나지 못하는 애욕의 굴레였던가. 아니면 태초 이래 남녀의 애정은 스스로의 경계를 풀어야만 하는 심오한 감정의 근원이었던가.

 

마음에 맺혀 지우지 못하는 그리움. 취기 오른 사나이의 서성이는 눈빛을 명마는 알았을까. 영리한 말은 등위의 주인이 술 취하면 가던 곳으로 그 밤을 달렸다. 술과 잠에서 깬 아침. 울며 당부하던 노모와 원앙금침의 식지 않은 여운 사이에서 장부의 다짐엔 한기가 서렸다. 번적이는 칼을 뽑아 자신을 그곳에 데려 온 애마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장부는 애마의 목을 벤 것이 아니라 가슴속 끓어오르는 사모의 정을 베어낸 것이리라. 들꽃향이 짙게 풍겼고 술은 익어갔지만 임은 오지 않았다.

임의 큰 뜻을 알고 간절히 비손한 여인의 비원이 하늘에 닿았을까. 계백이하 백제 5천 결사대를 풀처럼 바람처럼 황산벌에 쓰러뜨리고 금의환향하여 신라로 돌아온 김유신의 눈에 그 옛날 사랑을 나눈 여인이 어찌 그립지 않았을까.

 

빈터가 허허롭다. 벌판의 고즈넉함만이 절태의 희미한 흔적을 알린다. 흩어진 주춧돌과 어지럽게 뒤엉킨 잡풀이 초라한 염원을 담은 그녀의 탑인가. 사랑을 위해 죽음을 택한 천관녀의 위로 받고 싶은 넋인가. 불꽃처럼 타다만 미련의 애증인지 이끼조차 검다. 지켜주지 못한 장부의 미안함이었을까. 자신의 애욕을 채웠던 사랑에 대한 후회였을까.

 

천관사를 지어 향을 사르며 난세의 영웅도 사랑 앞에서는 뜨거운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으리라. 애마의 선혈이 물든 자리에 씻어야 할 상처를 허물며 지아비의 정을 돌탑으로 다시 쌓아 주었으리라. 한 계절 사랑했다면 한 계절 그리움이 남는 게 애정의 순리인가. 맴돌다 가는 바람만이 고요로 흐르는 염원의 길목처럼 천관사를 지키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라면 문제없을 사랑이 삼각의 관계에선 모질게 아파야 하는 것인지. 살기위한 본능의 이성보다 사랑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감성이 더 강한 것인지. 누구를 위해 사랑하지 않고, 무엇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다는 사랑의 경지가 이런 것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는 사람과 사람의 연으로 기억되는 것이 많다. 아픈 역사가 남은 장소는 그래서 더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고도(古都)로의 여행은 과거의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명주처럼 질긴 인연들과 그 시절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삶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밀리듯 지나가는 일상의 평면이 넓어지고 깊어져서일까.

천년의 사랑이 마음 한 자락을 놓지 않는다.

무형의 시간에 잠겨있는 돌무더기 몇 개가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형태로 오래오래 마음을 끌 것 같다.

 

기대어 설 나무조차 없는 허허 벌판에 떠나버린 사랑이 허공을 맴돌아도, 구름이 달빛을 가려도, 서성이는 달빛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푸른 보랏빛 제비꽃이 천광녀인 양 한들 된다.

달빛에 젖은 사랑이 있어 외롭지 않다고 

 



한시영

부산 문인협회 회원
부경 수필 문인협회 부회장
문학도시 취재기자

2016-01-26 13:02:17 수정 한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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