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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9호 10면    2015-12-29 10:36:17 입력
[수필의 향기] (9) 마음의 빛을 그리다
ab안현숙 | 2008년 수필과비평 등단
안현숙()

 

 
▲ 금경 作 기화(氣畵)

언젠가 하룻밤을 묵었던 구례 화엄사에서 만트라의 소리를 들었다. 밤은 이윽고 깊었으며 하늘거리는 달빛이 짙은 어둠을 품에 안고 어루만지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강한 진동음의 소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세포 하나하나를 파도처럼 쓸며 지나갔다. 낮고 깊은 진동음에 나는 물이 되었다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기도 하면서 구름처럼 몸이 흘러갔다. 우주의 본질을 알리는 소리, 원형의 진리를 드러내는 진동음이었다. 원형의 소리는 하늘과 땅의 소통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우주, 그 본질을 향하는 소리였다. 나는 그 울림 속으로 길을 떠났다.

 

마음의 기억은 매우 예민하다. 코끝에서 함께 느낀다. 향기에 젖었던 유년의 어느 날과 감성에 매료되었던 젊은 시절 그 어느 날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잠들어 저장되어 있을 뿐이다. 뇌의 어느 곳이 아닌 몸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몸이 느끼는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에 가깝다. 세포 하나하나 마다 집을 만들어 살다가 털끝만한 자극에도 어느 한순간 반응한다. 강한 생명력으로, 갑자기 완벽에 가깝도록 복원되어 되살아난다.

원형의 향기에 빛깔이 있다면 어떤 색일까. 검은색이거나 혹은 황금색일 수도 있겠다. 원형을 그리는 만다라의 빛깔은 모든 인간이 가진 마음의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운 색채를 가지고 있다.

 

6월의 어느 날, 나는 고흐를 만나러 프로방스의 햇살 속으로 들어갔다. 내 마음은 어느새 그를 꿈꾸게 했던 그 바람과 햇살 사이로 녹아들고 있었다. 햇살 사이로, 그가 사랑했던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들길 너머로 아찔한 어지러움이 향기로 퍼졌다. 프로방스의 언덕을 따라가는 길, 그가 속삭이며 말했다. 너무 빛나도록 맑아서 애처롭고 슬픈 그의 마음이 향기로 따라왔다. 우리가 찾아 헤매는 마음의 자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숨 쉬던 남프랑스의 들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캠퍼스의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고흐만큼이나 지독히 아픈 마음을 그렸던 화가 손상기를 떠올린다. 우리는 한때 낮은 담 너머로 들여다보이는 이웃에 살았는데 그는 어머니의 극진한 손님이었다. 33세의 짧은 생애를 마치기 불과 수 년 전, 평생 그를 옭아매어 괴롭혔던 가난과 굶주림이 극에 달해 있을 때였다. 구부러져 접힌 육신, 절반밖에 안 되는 키였으나 그 눈빛은 깊고 깊은 우물처럼 끝이 없었고 눈동자는 생생하게 살아 빛났다. 빛이 없는 삶이었으나 그 마음의 빛은 너무나 강렬하였다. 그의 그림은 시든 나무, 음울한 변두리 풍경이지만 너무나 찬란하다. 그가 가고 없는 지금, 사람들은 천재적인 화가요 탁월한 문장가였던 그의 빛을 추억한다. 마지막 영혼의 한줄기 인내까지를 온전히 담아낸 그의 그림은 영원히 남아있다.

 

금경의 그림도 그렇다. 휘몰아치는 그의 그림 앞에 섰을 때, 불현듯 떠오른 빛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음의 빛에 심취하여 빠져들었다. 우리의 마음 겹겹이 녹아있는 생명에의 빛, 존재를 위한 염원의 형상이 화폭 위에 살아 빛나고 있었다. 찰나가 결이 되어 붓끝을 흔들었으리라, 그 순간의 생명, 생명 있는 것과 무심한 것까지에 이르는 그 마음의 깊이가 역동적으로 뿜어져 나와 살아 움직인다. 그 기는 우주의 장대함을 따라간다.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원형의 향기를 품은 바람소리를 듣는다.

마음의 빛을 만나게 해 준 그들의 경이로움에 심취한다.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다. 우리의 그 깊은 마음의 표상들을 대면하며 전율을 느낀다. 그들의 심연은 따라가 볼 수 없는 길이지만 그림으로 되살아나서, 늘 우리 곁에 있다.

 

오늘도 그 빛을 본다.

 



안현숙

2008년 수필과 비평 등단

2015-12-29 10:36:17 수정 안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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