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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9호 2면    2015-12-29 09:04:15 입력
[시론] 앞으로 50년, 다함께 새로운 역사 만들어가길!
ab부산광역시건축사회 창립회원 회고
전학주 창립회원()

 

우리 회가 어느덧 창립50주년을 맞았습니다.

196537명의 창립회원으로 시작된 우리 부산건축사회가 이제 826명의 건축사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랜 기간 협회에 몸담고 있던 한 사람으로 감회가 남다릅니다.

 

1965년 창립 당시는 건축사시험 제도를 두고 건설교통부와 대졸자간 입장차로 논란이 많던 시기였습니다. 건축사법 부칙(19631216) 2조에 의하여 건축사법 시행당시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아 건축에 관한 행정서사의 업무를 영위하고 있고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전형을 거쳐 1급 건축사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에게는 1급 건축사 면허를, 기타의 자에게는 2급 건축사 면허를 교부했는데, 이에 따라 1급 시험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부산의 경우 동아대, 부산대, 공업학교 등 학연에 많이 얽혀 있었고, 이는 역대 회장 선출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돌이켜보면 설계업무가 풍부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업무가 부족해서 고생을 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복지회라는 조직의 역할이 상당했습니다.

1994년도 회장 취임 당시, 전임 회장의 노력으로 복지회가 가장 활성화 되어 있었습니다. 설계비 덤핑을 방지코자 마련한 복지회가 활성화되어 매월 회원들에게 150~200만원이 배당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설계비 예치제가 도입되어 설계비를 적정하게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요인들로 모든 회원이 단합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지회가 청산되고, 업무가 세분화·개인화되면서 협회를 중심으로 한 회원 간 단결력이 약화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 앞으로 건축사로서 사무소를 경영해 나감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우려돼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과거에는 작은 업무만으로도 상당한 경제적 수익을 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노력 여하와 경쟁력이 큰 차이를 가져올 것이고 자신만의 기반(건축철학 등)을 잘 갖추어야 나가야 할 것입니다.

 

본인의 임기 중에는 부산의 대형건축물 및 관공서 현상설계를 부산의 A건축사사무소에서 독점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에 젊은 건축사들께서 현상설계 운영방식의 시정 등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제게도 탄원서가 오고, 정부 여러 부처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당시는 김영삼 대통령, 박관용 비서실장(동래구 국회의원), 이진복 비서실장 보좌관이 자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두 부산사람 아닙니까? 그리하여 청와대에서는 동래구 구의원인 향토 설계 김진철 건축사를 통해 청와대를 방문하라고 하였고, 당시 저는 김진철 건축사와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청와대에서도 영국 등 외국의 현상설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진철 건축사와 본인은 면담 시 부산시 관련부서에 하달하여 투명한 현상설계를 요청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겠느냐고 제안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토론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 잠깐 변화가 왔습니다. 강서구청사 현상설계에 부산의 P건축사가, 또 부산진구청사에는 L건축사가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재임 시, 일본 오사카후건축사회가 대전엑스포 관람을 할 목적으로 23일의 일정으로 방한키도 했습니다. 방한단은 고니시 회장과 여성회원을 포함해 28명으로, 여성건축사 중에는 고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는 건축사도 있었습니다. 행사 후 양회 회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련된 동광동 단합대회는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이후 양회의 젊은 건축사들은 삼삼오오 어울려 부산 광복동 거리와 선술집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한 젊은 여성건축사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년에 5~6건의 설계의뢰만 받아도 사무소의 운영이 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또 설계를 의뢰받고 인·허가를 득하고 난 후, 공사 진행시 시공자와 함께 재료를 구입하고, 시공방법을 상의할 뿐 아니라 건물이 준공될 때 까지 함께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일본은 건축사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지난 50, 우리 건축사회는 많은 어려움도 있었고, 또 매우 유익하고도 좋은 시간도 많았습니다. 특히 1997IMF 사태로 많은 회원들께서 매우 어렵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수년간의 노력으로 감리제도, 업무대행제도 등의 도입으로 우리 회원들께 희망과 안정을 찾아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듯 좋은 제도를 유지 발전시켜 회원 상호간 화합하면서 우리 건축사회의 힘을 모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50년도 회원 모두가 다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전학주 창립회원 | 부산광역시건축사회 제15대 회장, 국일 건축사사무소

 

 

 

 

 

전학주 창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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