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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7호 9면    2015-10-22 16:58:59 입력
[수필의 향기] (7) 손님
ab김채석 | 수필가, 여행작가
김채석()

 

▲ 그림. 이종민 건축사 (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아내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가게에 가면 하얀 플라스틱의 낡은, 화분 두 개가 입구에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있다. 이 중 하나는 손잡이라 할 수 있는 테두리마저 깨져 볼품이 덜하지만, 두 화분 모두 식물이 꽃을 피우고 살아갈 수 있는 아늑한 집의 역할을 넉넉히 해내고 있다. 그것도 생각지도 않는 뜻밖의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는 것처럼이나 해마다 의외의 꽃을 피워주곤 한다. 마치 덕을 베풀어주는 것 같다.

그 화분과 인연이 된 것은 평소 국화를 좋아해 마을에 있는 중학교에서 수백 개의 화분에 여러 종의 국화를 길러 가을이면 국화축제가 열릴 정도로 열성인 일명 국화 할아버지가 해를 달리해 가며 선물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국화는 화무십일홍이 아니고 한 달 정도나 오래 피기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기도 하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하는 덕을 베풀다가 가만히 시들어갔다.

 

이듬해 봄, 국화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 해서 그루터기처럼 덩그러니 남은 화분을 보면서 내심 군에 간 아들 첫 휴가 나오기를 기다리듯 새싹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건만, 언감 잡풀만 올라왔다. 하나 아내는 뭇 생명을 소홀히 한다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아니라 되레 소중하게 여기기에 무심코 라도 뽑아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고 잡풀 중에서도 몬주익(Montjuic)의 영웅 황영조처럼 막판 스퍼트를 내는 풀이 있었다.

그 풀은 다른 풀을 젖히고 씩씩하게 세상의 모든 것을 추월하듯 쑥쑥 자랐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어찌나 자라는지 버팀. 지지대를 박아줘도 모자라 두꺼운 낚싯줄을 천장에 매달아 연결해 주었더니 한낮 풀에서 넝쿨 식물로 신분이 바뀐 녀석은 줄도 모자라 담쟁이 벽을 타듯 천정을 따라 자랐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어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작은 포도처럼 흰빛 분홍으로 알알이 박힌 꽃을 보고 어떤 분이 이르기를 후추나무라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무런 말없이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라 일렀다. 그리고 그 손님은 해마다 남긴 씨앗으로 인해 매년 만나고 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며 축복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간혹 손님에 관한 생각에 젖을 때가 있다. 손 님. 가족 외에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의 손님은 보고 싶음과 그리움을 충족시켜주는 반가운 존재였지만 예전과 같이 자주 사용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이에 대해 지금은 전국이 일일생활권이어서인지는 몰라도 찾아와 묵어가는 손님은 거의 없는 편이다. 하지만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만 해도 집에는 수시로 손님들이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처럼 멀리서 오시곤 했다. 그리고 손님은 수학의 공식처럼 오시면 반가운 손님이어야 정답인데 반대로 그렇지 않은 오답 같은 손님이 더러 계셨다. 개중에 약주가 과한 오촌 당숙 어르신은 밤새 이부자리에 실례하고 남몰래 일어나 도망치듯 떠나셨는데 두어 차례나 그런 일을 겪은 어머니께서 몹시 곤혹스러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내가 선 듯 생각하는 손님은 정작 다른 분야에서의 손님이다. 그래서 생각건대 1930년대가 배경인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그 시절에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인간적 감정 사이에서 번민하는 어머니와 그녀를 연모하는 사랑손님 간의 사랑과 이별인데, 이때는 모던보이와 걸들이 백열등 흐린 구락부(클럽)에 모여 서구 리듬에 맞춰 신식댄스를 즐기는 시기였기도 하지만, 양반계급에 뿌리를 둔 사대주의적 사고의 여파로 재혼을 부정적으로 보던 당대의 시대상을 생각해 보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싶다.

 

지금이야 메일이나 휴대전화가 손님의 안부를 대신한다. 그만큼의 신속하고 편리한 세상은 인간의 그리움이나 정마저도 무의미하게 할 정도다. 실지로 스마트한 기기는 지하철이나 버스 등 어느 곳에서도 사람들의 고개마저 숙이고 있도록 한다. 그만큼 문명의 이기가 사람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오죽했으면 중국에서는 온종일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사람을 고개 숙인 사람의 저두족低頭族이라 한다는데 실지론 지나 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에둘러 일컫는 말인 것 같다.

그만큼 스마트하고 편리한 기기는 사람과 사람의 간격을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좁혔지만, 실지론 더 늘려놓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말인데 더러는 불편하더라도 느릿느릿 속마음을 담은 편지도 써 보내고, 예전처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의 헤어짐이 아쉬웠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이제는 좀 그만 편리하고 문명의 이기에 자발적으로 돈 들여가며 점령당한 정신을 광복시켜야 할 시기로 공공장소마다 고개를 숙이고 뭐가 그리도 좋을까. 히죽거리는 사람들의 풍경이 썩 좋아 보이지 않음을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손님을 생각하다 말고 괜한 걱정을 하는 내가 우스운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날엔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말이 진종일 생각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는 뜻으로 손님을 대신해 벗이라도 찾아온다면 화분에 자라는 꽃 자랑도 하고 싶고, 요즈음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어떤 음악을 듣고 있는지? 마음가짐은 어떤 원칙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등 숫제 토론이나 담론은 접어두고 수다나 떨며 세상의 조롱이 아닌 그저 그런 이야기나 나누고 싶다. 한 잔 두 잔 약주의 유혹을 전혀 뿌리치지 않으면서.

 



김채석 | 수필가, 여행작가 

김채석은 등단 수필가이며 여행작가이다. 개인 블로그 '을숙도에 부는 바람의 노래'(blog.daum.net/kcs1279)에서 부산이야기, 여행산문, 문학기행 등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서간문 수필집 <형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으며 문학모임 '에세이스트 디다'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5-10-22 16:58:59 수정 김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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