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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6호 10면    2015-09-18 16:49:24 입력
[수필의 향기] (6) 부라보 도다리
조유환()

 

▲ 그림.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여름날 어스름 저녁 무렵이면 통고무 조리를 끌며 동네어귀를 어슬렁거리는 청년이 있었다. 유달리 얼굴이 검고 하관이 쪽 바른 스무 살 남짓의 충무동 건달 

갓 입학한 중학생인 우리보다 댓 살 위, 일면 무섭기도 또 다른 편으론 그저 쓸데없이 우리에게 가까운 척 하는 동네 형. 일명 도다리, 까무잡잡한 얼굴에 비쩍 마른 몸이라 누군가 재미 삼아 부쳐준 별명이었을 것이다.

 

가물거리는 기억이긴 하지만 근처 수산센타에서 생선궤짝이나 나르는 허드렛일이 그의 직업이라면 직업일 것이었다. 별 돈을 버는 처지도 아니라서 옮기다 길에 떨어진 고등어라도 둬 마리 있으면 비니루 봉다리에 들고 와 동네 식당에 맡기고 밥을 얻어 먹는 것도 여러 번 봤다.

 

아무튼 우리들의 도다리형은 의리의 사나이이고(왜 그런 수식어를 붙인 건지는 아직도 까닭을 모르겠지만) 싸움에는 도가 트이고 욕지거리의 대가이며 장판 자른 만화방 표를 열 두어 장씩 들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던 인심 좋은 형이었다.

 

뿐이랴, 당시 유행이었던 야와라도장에서 단련된 빈틈없는 자세와 굳건한 몸짓이 펼쳐내는 현란한 시범동작은 한마디로 홍콩무술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요 악독한 일본순사를 한방에 골로 보내는 열혈 독립군 청년이었으니 어찌 중학 꼬맹이들의 우상이 아니었으리. 성격 역시 불칼 같아서 어쩌다 그에게 밉보이기라도 하면 박박 밀은 우리들의 푸른 대갈통에는 여지없이 벌겋게 철사장의 손도장이 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그의 일상들이 허세과시용 시간 때우기였던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외려 동네의 착한 동생들에 대한 나름의 따뜻한 애정이었음이 분명하리라.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말로만 펼치고 동작으로만 보여준 당당한 위세가 실전에서 화려하게 우리 앞에 펼쳐진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당시 윗동네 유도방 사범 타이거가 우리 동네 술가게로 기어 내려와 행패를 부려 댔던 바, 만고의 텃세영웅 우리 도다리형이 도저히 안 나설 수가 없는 시간이 오고야 만 것. 언제 연락이 닿았던지 닭꼬치와 라면을 안주로 삼던 가게 앞으로 그가 훌쩍 나타난 것이었다.

 

멋들어진 자태. 탄탄한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물살을 가르는, 한 마리 검은 도다리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록 도도한 취흥이 오른 떡 벌어진 어깨의 소유자 타이거였지만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 죽고 싶나!”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도다리형은 바닥에서 수면을 순식간에 차 올라오듯 생선비린내 가득한 충무동 밤하늘을 가르고 뾰로로 날아 올랐다. 연이은 발차기의 작렬. 결과는 물 보듯, 아니 도다리 얼굴이 검은 것을 누구나 알고 있듯 타이거의 단말마적 비명이 곧 터져 나올 것이었다.

 

앗 하는 순간의 결과는 우리 모두 아연실색, 두 다리 든든하던 타이거가 마치 물가에서 튀어 오르는 생선 잡아 채듯 호랭이 같은 손으로 목을 잡고 그대로 내동댕이, 이른바 멋들어진 한판의 업어치기로 우리의 영웅을 무참히 패대기 쳐 버린 것이다. 며칠 전에 깔아 놓아 채 여물지도 않은 시멘트 신작로길 위에 파닥거리던 도다리 형의 그 낭패의 모습. 까만 얼굴에 무참히 쏟아지던 나무곽 생선상자의 세례. 천하의 아니 수궁세계 최강의 도다리인들 어찌 아니 뻗어버릴 것이었겠나 

그 여름도 지나가고 또 가을도 지나고 한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도다리 형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듬해 봄,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던 한 무리의 청년들. 지저분한 장발에 하얀 난닝구, 삼색 아디다스 런닝화에 곤색추리닝 등을 입은 일군의 사내들 속에 도다리 형이 끼어 있었다. 나를 보고 씨익 하얀 이를 드러 내며 겸연쩍게 웃어주던 까만 얼굴. 그러고도 세월은 마구로 배물살을 가르듯 수이 흘러갔다.

 

이후에도 친구들은 형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누구는 그가 남항의 멸치잡이 배에서 그물을 터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고 어떤 친구는 그가 칠성파의 일원이 되었을 거라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만, 그는 나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언젠가 중앙동으로 차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중부산 소방서 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받아 서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길 반대편으로 다 지나가자 수신호로 차를 출발시키던 교통순경, 도다리 형이었다. 무궁화 한 개, 경위의 계급, 비록 약간 배가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처럼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 햇볕에 까맣게 탄 탓인지 얼굴 역시 완연한 도다리 물색. 하지만 어 하는 새에 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내 차는 출발을 해버렸다.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차를 몰아 나오는데 하릴없이 눈물이 찔끔거렸다. 부모 없이 홀로 밑바닥 훑고 살아온 인생. 모진 세상을 헤엄치듯 자갈치 바닥을 쓸고 다니던 험한 청춘. 그래도 제대로 살아 보겠노라, 쪽 팔리지 않게 살겠노라 열심히 인생바다를 헤엄치고 살아왔을 사내. 배운 것 제대로 없는 동네 양아치가 모자챙에 금테 씌운 빛나는 경찰간부가 되었으니 그야말로 바닥에서 만경창파 도도한 물위로 올라온 인생역전이 아닌가.

 

도다리가 그렇다. 비록 태생적 한계로 오른쪽으로만 붙어버린 눈이긴 하나 힘있고 부릅뜨는 눈이라면 물고기 중에서 빠지지 않을 만 하고, 작지만 바닥을 날렵하게 기어 다니기로도 그만하기 힘들다. 양식을 거부하고 자연산으로만 세상에 튀어 나오니 그것도 자존심 있는 일이고 비록 남을 씹어대는 이빨은 없다 하나 봄 쑥국에 세꼬시라면 도다리가 으뜸이니 맛으로도 뒤처질 바 아니다. 막장 인간도다리의 멋진 변신, 그의 인생부상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그 때의 꼬치친구들 역시 다들 험난한 인생파도를 넘고 넘어 왔겠지만 겨우 멸치라도 면했으면 그것도 고마운 일일 게다. 나 역시 어물생선이라면 도다리 축에도 못 끼어들지 모르겠다. 허긴 광어면 어떻고 가자미면 어떨 것이며 또 납세민들 넙친들 다아 거기서 거기. 어차피 민어나 참돔과는 거리가 멀다. 장삼이사 그럭저럭 세상 살아가지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 아닌가 말이다. 

보라구, 막장인생 도다리도 세상 옹지게 살아가던 걸 머.



조유환

2000'수필문학' 수필 등단
2007'시와 글사랑' 시 등단

대한요트협회 전문위원 역임

한진중공업 재직 중

2015-09-18 16:49:24 수정 조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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