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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4호 11면    2015-07-22 17:03:54 입력
[수필의 향기] (4) 갑옷, 뚫리다
최홍식 수필가()

 

▲ 그림.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명랑하면서도 저음의 목소리가 모바일 폰을 통해서 들려온다. 동문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젊은 후배의 전화이다. 약속한 동문발전기금을 빨리 보내란다. 나는 은행계좌번호를 확인한 후 모바일 뱅킹으로 즉시 송금한다. 잠시 후 그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선님.

아마도 선배님 땡큐라는 말을 간단히 선님, 이라고 했으리라. 스스로 컴퓨터와 인터넷 도사라고 말하는 이 젊은이는 그런 면에서 나의 멘토이기도 하다. 어쨌든 일이 정말 빠르고 쉽게 처리된 셈이다.

 

디지털시대를 맞아 우리는 진실로 편안한 세상에 살고 있다. 모바일 뱅킹이나 SNS를 이용하다보면 마치 신천지에 살고 있지 않나 착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해킹사고, 악성 댓글 그리고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한 마음과 그에 따른 피로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한동안 나는 세상 얘기나 지인들의 소식을 접하기 위해 SNS를 가끔 이용하였다. 그리고 내 생각이나 주변의 일들을 글로 표현하곤 했다. 지난 해 여름이었다. 페이스 북 어느 한 쪽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내 글이 다른 이의 이름으로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한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그 사람이 실수했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내용을 정정하는 것으로 그 일의 매듭을 풀었다.

하지만 오래도록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이런 서비스의 이용을 삼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버세계에서는 나와 관련된 정보가 모르는 사이에 타인에 의해 쉽게 전용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수록 걱정이 앞섰다.

 

이어 더 큰 일이 일어났다. 우리 사회가 우려했던 금융카드사의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천문학적인 개인정보가 사이버 공간 일부로 유출된 것이다. 정보화 사회를 강타하는 큰 사건이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해당 금융기관으로 몰려가고 그 은행의 업무가 마비되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거래하고 있는 은행을 찾아 먼저 내 정보의 유출 여부부터 확인하였다. 잠시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창구의 실무자는

고객님의 개인정보도 유출되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그곳에는 같은 형편의 사람들이 은행의 책임자에게 사태의 심각성과 책임을 큰 소리로 추궁하고 있었다. 책임자는 계속 큰 문제는 없으며 개인 금융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유사한 사고가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앞뒤가 맞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반복해서 말했다.

 

다음 날 다시 은행을 찾았다. 전날의 얘기와는 달리 카드 비밀번호 변경이나 새 카드 발급 신청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므로 실제 발급까지는 장시간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새 카드를 신청하고 사용하던 비밀번호를 변경한 후 은행을 나왔다.

하지만 카드결제계좌와 주민등록번호를 포함한 중요한 개인 금융정보가 고스란히 빠져나갔으니 언제 어떤 방법으로 나의 계좌가 공격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어떻게 신용정보를 지켜야 할지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사이버공격을 실감하게 되었다.

 

언젠가 예의 그 후배를 만났을 때였다. 얘기 끝에 컴퓨터나 인터넷 전문가인 그도 이러한 어려운 일을 당했느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저는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지요

몇 가지 완벽한 안전장치를 해 두었고 평소에도 보안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염려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상황은 그와 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일 뿐이었다. 신용정보의 생명줄과 같은 비밀번호이지만 이미 구멍이 뚫린 오늘의 신용사회에서 내가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금까지 들여다보던 컴퓨터에서 잠시 눈을 뗀다. 그리고 일어서서 거울을 본다. 그 속에는 지친 나의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다. 그 남자를 향하여 혼자 중얼거린다. 보안을 위한 갑옷 하나 제대로 없으니 이제 어찌하면 좋은가. 이 때 모바일 폰에서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음이 울린다. 바로 그 후배이다.

선님. 저의 갑옷도

완벽하다는 그의 갑옷 역시 뚫린 것이다. 다른 사람 아닌 그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폰으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다. 누군가 자기 계좌에서 상당 액수의 돈을 빼내갔다고 한다. 이어 징징대는 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최홍식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월간 수필문학상임편집위원으로 활동
부산수필문인협회 회장 및 부산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역임
문학상으로 부산문학상 대상등 수상, 수필집 뜸 들이는 시간

 

2015-07-22 17:03:54 수정 최홍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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