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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4호 10면    2015-07-22 16:33:32 입력
[건축을 보다] ㉚ 풍경風磬이 걸린다
김해경 시인(kyung-6287@hanmail.net)

 

집들이 돌아앉았다.

거대한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들이 돌아앉아있다.

오랜 세월 똑같은 집과 집이 등을 맞대고 사람의 소리와 시간의 흔적을 거짓 없이 세상에 내 보인 곳. 집 벽은 습기가 차오르고 벗겨진 페인트엔 남루가 무성해도 하루하루 벼랑 같은 삶을 지켜온 목숨터. 그런 쌍둥이 같은 집을 큰 길을 내기 위해 한 채씩 허물고 나니 남은 집들은 문을 잃고 숨겨 놓았던 상처들이 도드라져 온 동네가 상심으로 가득하다.

오래전부터 사람은 해를 향하여 집을 짓고 창을 내고 아침이면 그 해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을 터이다. 그렇게 지어진 집들이 꿈들이 하나씩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욕망으로.

 

조용했던 동네가 언젠가부터 시끄러워졌다. 허리 굽고 이빨 빠진 어른들은 해만 뜨면 골목으로 나와 웅성거리고 젊은이들은 무언가에 들뜬 얼굴로 바삐 움직인다. 알 수 없는 기운이 온 동네를 휘감아 돌 즈음 거대한 플랜카드가 내 걸렸다. 일명 재개발이라는 허상을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골목 곳곳에 심어놓은 것이다. 어른들은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이 없다고 죽기 전에는 도장 못 찍는다고 으름장을 놓고 젊은 사람들은 여기가 개발되어야 우리가 산다고 동네가 난리통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느 날 새벽 커다란 포크레인이 들이닥쳐 재개발 보다는 뉴타운이라는 신선한 외래어가 낫겠다고 일단 집 몇 채를 없애겠다고 통보를 했다. 첫째 날 하약국을 부수고 다음날 통통반점, 그 다음날 예쁘니 머리방 종점 다방이렇게 집들이 사라지고 나자 그 곳엔 길이 아닌 길들이 생겨났다. 한동안, 남은 사람들 그 길 위에서 우왕좌왕하며 공중에 떠 있는 애매한 것들에 목말라 하더니 이제는 서서히 잠잠. 어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레 길이 되어버린 안방위로 차가 지나다니고 꽃댕강 나무가 심겨지고 키 큰 전봇대가 세워졌다. 하나씩 새로운 것들로 풍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떠난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 오래전 풍경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멈추어 있을 것이다.

 

재개발도 뉴타운도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골목마다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들의 소란스런 목소리도 학교 앞 문구점 백 원짜리 오락기도 지금은 소강상태.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저녁이면 엄마가 부르는 이름마다 아이들이 하나씩 처마 낮은 집으로 달려가고 밤늦은 시간이면 한집의 가장들이 거나한 발소리로 찾아들던 불빛 환한 집들. 그 집들이 그립다.

집들이 헐리고 길이 생기고 사람이 떠나고 추억도 흐릿해졌다. 그래도 아직 남은 골목에는 도란도란 해바라기를 하며 옥상 텃밭에서 키운 고추며 가지를 나눠 먹는 어른들이 있고 30년 넘은 종점통닭 찌든 기름 냄새에 고단한 하루를 보상받는 삶들이 있는 곳.

 

크고 멋지진 않지만 작고 좁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랑빨강 색칠을 하고 옥상 물탱크에는 출렁이는 바다색으로 칠을 하여 하늘과 맞닿은 길을 만들자. 이제는 이곳에 사과나무를 심고 감나무를 심자. 가을이면 잘 익은 과일들이 집집마다 축복처럼 환할 것이다. 동네사람들 광주리 가득 과일을 따고 달디 단 과일을 이웃과 함께 먹으며 문안을 나누다보면 숨어있던 풍경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벌써 입속에 침이 고인다. 달콤한 과일향이 입속에 가득 고이는 즐거운 상상으로 흐물흐물 웃음이 나는데 며칠 전 처마에 달아 놓은 풍경이 뎅그랑뎅그랑 내 마음을 읽고 있다.

 

김해경 시인 |
부산출생, 2004년 계간 [시의 나라]등단
시집 {메리네 연탄가게} , 또따또가 문화공간 [수이재] 활동

 

2015-07-22 16:33:32 수정 김해경 시인(kyung-62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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