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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4호 8면    2015-07-22 15:23:54 입력
[타박타박] ㉓ 백제의 미소를 찾아서
박미경 건축사(park@sangji21c.co.kr)

 

여행은 언제나 설렘과 기대를 안고 출발한다. 나에게 서산지역으로의 여행은 더욱 그러하다. 왠지 서산은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비록 내 고향은 남해 다도해일지라도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오랜만에 대학시절의 열정을 되새길 답사기행을 한번 해보자는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단번에 서산의 개심사와 해미읍성, 예산의 수덕사와 추사고택을 추천했는데, 아마도 그건 서산, 서해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이 한 몫 하였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을 하던 때 비교적 가까운 충청도 지방으로 여행을 떠난 기억이 있다.

 

▲ 해미읍성에서

 

해미읍성

완연한 봄, 석가탄신일을 몇 주 앞둔 어버이날, 어버이를 둔 이와 이미 어버이가 된 이까지 총 12명의 건축사가 부산에서 서산으로 출발했다. 아침 일찍 출발한 덕에 정오를 조금 지나 해미읍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한산한 주차장에 내리니 책에서 보아오던 읍성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12명의 건축사가 모두 성 높이로 입씨름 중이다. 7m, 6m, 5m로 의견이 분분하더니 기어이 근처 가게에서 줄자를 사오는 도대현 건축사. 도 건축사의 희생으로 성 밖 주차장 쪽에서는 성 높이가 7m임을 알았다. 마침 안내책자에는 성 높이가 5m로 되어있어, 성 안팎으로 높이 차이가 남을 알 수 있었다.

따뜻한 국밥으로 여유 있는 식사를 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읍성에 오면 성곽을 따라 우선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도대현 건축사의 조언에 따라 성 위를 줄 서서 걸어보았다. 목가적인 풍경이, 오래전 이곳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은 연상되지 않을 만큼, 평온하게 다가왔다.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도들이 끌려와 고문을 당하고 목매달려 죽었다는 회화나무도, 멀리서 보니 그저 평온해 보였다.

▲ 해미읍성 내부

 

해미는 바닷가에 임하여 서해안 방어요충지였던 이유로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해 읍성이 축조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 병마절도사영이 있었으며, 서해안 방어의 군사요충지로 1578년에는 이순신이 이곳에서 병사영의 군관으로 열 달 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읍성은 사적 제116호로 전북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병인박해의 아픈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천주교인들에게는 순교의 순례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넓은 잔디밭과 체험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고장 사람들에게 소풍장소로서의 몫을 담당하고 있다.

  

개심사

해미읍성을 나와 개심사로 향했다. 개심사로 가는 길엔 독특한 풍경의 민둥산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떼를 볼 수 있다. 과거 김종필의 목장으로 알려진 삼화목장이다. 모두들 삼화목장의 낯선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 질 때 쯤 개심사에 도착했다.

개심사는 가는 길에서부터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곳이다. 힘들지 않게 숲길의 돌계단을 걸으면 팍팍했던 마음도 부드러워지고 돌계단 하나하나에 고단함을 내려놓듯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계곡의 물소리와 바람소리, 새소리로 흥겨움을 더하고 약간의 땀과 함께 적당히 걸었다 싶을 때쯤 네모난 연못과 외나무다리가 나온다.

개심사의 아름다운 풍경에 모두 넋을 한번 놓는다. 너나할 것 없이 외나무다리에서 멋들어지게 포즈를 잡아보고 건넜다. 1주일만 빨리 왔었더라면 왕벚꽃의 만개를 볼 수 있었으리라. 막 지기 시작한 왕벚꽃이 못내 아쉽다.

네모난 연못의 외나무다리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왼편에 안양루가 앉아 있다. 안양루는 개심사에서 가장 좋은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아쉽게 다른 풍경을 보느라 오르지 못했다. 안양루 옆 해탈문을 지나면 비로소 대웅전이 나오고 남북으로 나란히 앉은 심검당과 무량수전이 나온다. 심검당은 필자가 개심사를 가장 기분 좋은 사찰로 기억하게 만드는 건물이다.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휘어진 나무 그대로를 대들보로 사용하여 질박한 아름다움이 대단하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후기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 개심사 심검당

▲ 개심사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단정한 맞배지붕의 품위가 돋보이는 조선 초기 건축물이다. 다포계 건물이지만 안쪽에서 주심포식 지붕구성을 보여주어 고려시대와 조선의 과도기적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를 지니며,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발하기 전 읽었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명부전 너머에 있는 산신각에서 경내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다하여 산신각으로 올랐다. 그가 다녀갔을 때 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일까, 울창한 나무숲으로 인해 경내 모습은 잘 볼 수 없었지만 개심사의 소박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산 마애삼존불

개심사를 뒤로하고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불로 향했다. 학창시절 책에서 배운 백제의 미소를 보기 위해서다. 예전에 갔을 때는 전각 안에 삼존불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전각을 철거하고 삼존불을 그대로 열어 두었다고 하니 사뭇 기대에 부풀어 용현리 계곡을 올랐다.

삼존불상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였다. 처음 본 것이 아님에도 생각한 크기와 달라 당황스러웠다. 역시 기억도 오래되면 바래나보다. 지혜로운 선조들은 바위를 하단부에서 안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두어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했다. 바위를 이토록 섬세하게 깎은 불심에서 경건함을 느낀다. 세 부처님 모두 다른 얼굴에 다른 미소이다. 가운데 본존의 얼굴이 가장 두드러지고 높은 돋을새김을 이루고 있으며, 옷자락의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 서산마애삼존불

 

당진과 태안지역은 중국의 산동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이곳이 교역항이 되었고 그 길목에서 안녕과 평안을 빌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갑자기 찾은 관광객에게도 아주 친절하게 해설해주시는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어렵지 않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다른 미소를 보인다는데, 종일 머무를 수 없음이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되면 오전 중에 와서 다른 미소를 보아야겠다.

 

계암고택과 정순왕후 생가

서산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계암고택과 정순왕후 생가를 들렀다. 사람들이 살면서도 잘 보존되고 있는 두 고택 모두 단아한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아침에 출발하여 하루 동안 서산의 몇 군데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교통의 발달을 느낀다. 비록 충분하게 서산의 구석구석을 보진 못했지만 해지기전에 해미읍성과 개심사, 서산마애삼존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튿날 아침은 안면도에서 맞이하고 여유 있게 예산으로 출발했다. 예산으로 가는 길에는 서해안의 간척지구들을 볼 수 있었다. 남해안에서 보기 힘든 이색적인 풍경이다.

 

수덕사

수덕사 입구는 여전히 복잡했다. 아니 오히려 더 상업화 되어있다. 토요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관광객들도 상당했다. 과연 우리나라 대표사찰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수덕사로 향하는 길 왼편에 수덕여관이 있다.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가 있으나 수덕여관 역시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수덕여관은 한때 나혜석이 머무르기도 하였고, 이응노 화백이 구입해 부인에게 주고 제자와 함께 프랑스로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초가지붕을 고수하고 있어 더욱 알려진 건물이다. 지금은 수덕사에서 매입하여 미술관과 함께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 수덕여관 측면

▲ 이응노 화백의 암각화

 

석가탄신일을 앞둔 수덕사는 온통 행사준비로 한창이었다. 사찰입구의 상업화와 희멀건 화장석(化粧石)으로 올린 높은 기단으로 보수된 요사채(寮舍寨)로 인해 마음이 좋지 않더라도 곧 대웅전 하나에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다. 세상 어디에 이렇게 아름다운 비례와 색채, 구조미를 가진 건축물이 또 있을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에 대하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유홍준은 이렇게 표현했다.

 

국보 제 49. 덕숭산 남쪽에 자리잡은 수덕사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건물.

현존하는 다섯 채의 고려시대 목조건축 중 하나로 충렬왕 34(1308)에 건립된 것이다.

정면 3, 측면 4칸의 주심포 맞배지붕으로 조용한 가운데 단정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며 불당으로서 근엄함을 잃지 않고 있다.

건물의 모든 결구는 필요한 것만으로 최소화하고 여타의 장식을 배제하였으며 기둥과 창방의 연결고리인 공포장치는 단순한 가운데 힘이 넘치며, 마름모꼴 사방연속무늬의 창살은 이 집의 정숙한 기품을 더욱 살려준다.

특히 이 건물의 측면관의 면분할은 안정과 상승의 조화를 절묘하게 보여주며 거의 직선으로 뻗은 맞배지붕의 사선은 마치 학이 내려앉으면서 날갯짓하는 듯한 긴장이 살아있다.

배흘림기둥에 기둥과 기둥사이가 비교적 넓게 설정된 것은 백제계 건축의 특징으로 생각되는 것이며 그로 인하여 지붕골이 조금 높고 길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건물 외벽에도 별도의 단청을 가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림보다 더 큰 조형효과를 자아낸다. 내벽에서는 1934년 대대적인 해체수리공사 때 아름다운 야생화를 담백한 채색으로 그린 것이 발견되었다.

<발췌 :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 유홍준>

 

▲ 수덕사 대웅전 측면

 

대웅전은 맞배지붕으로 단면구조가 건물 양 옆 벽에 그대로 노출되는데 기둥과 기둥, 그 사이를 연결하는 도리, 도리를 결구하는 우미량의 구성은 역동적인 구조미와 함께 목구조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마당에 소담스럽게 핀 수국이 대웅전의 모습을 닮아있다.

수덕사를 내려와 초입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후 마지막 여정인 추사고택으로 향했다.

 

추사고택

추사고택이 있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마을로 가는 길은 작은 시골길이다. 버스 창밖으로 열려진 시골풍경을 마음껏 즐기다 보면 추사고택이 보인다. 전날 본 계암고택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대문채와 사당채는 1977년 집을 복원할 때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자를 이룬 사랑채에서 한참 앉아 봄볕을 즐기다 천천히 집을 돌아본다. 집은 전체적으로 동향이나 사랑채는 남쪽을 향하고 있다. 사랑채 벽면에는 세한도가 걸려있다. 진품일리 없지만 감격스럽다. 다행히 관광객들도 많지 않아 집은 오롯이 우리 12명의 소유가 된 듯하다.

 

▲ 추사고택 사랑채


▲ 추사고택 안채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정면에 넓은 대청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안방과 부엌이, 왼쪽으로는 안사랑과 작은 부엌이 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뒤쪽으로는 후정이 앞으로는 사랑채가 보인다.

자 모양의 안채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에 내리는 햇살을 즐기며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

안채의 왼편에는 사당채로 오르는 길이 있다. 돌층계와 대밭으로 이루어진 이 길은 사당채로 들어가는 작은 문까지 운치 있게 조성되어 있고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는 길은 안채의 후정과 연결되어 있다.

추사고택은 전체적으로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형식이 깔끔하기도 하겠지만 새롭게 보수한 흔적이 아마도 세월의 흔적을 덧씌웠으리라. 기둥마다 붙어있는 주련 역시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추사의 무덤이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지만 이번 기행은 이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12일의 짧은 여정, 기약 없는 다음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추사고택에서 [윗줄 왼쪽부터] 손근호(종합건축돔) 강미숙(주.중앙엔지니어링건축) 도대현(도건엔지니어링건축) 이쾌주(이주건축) 박미경(주.상지이앤에이건축) 김정화(주.새누이엔지건축) 김기윤(수만채건축) 김은주(지음건축) [가운뎃줄 왼쪽부터] 최진태(시원건축) 손양순(동현건축) [아랫줄 왼쪽부터] 조형장(건축메종) 김태훈(TNP엔지니어링건축)

 

이번 여행은 건축을 하는 사람들과 오로지 건축답사만을 목적으로 한 기행이었다. 오랜만에 충분히 답사하고 20여 년 전 대학시절 풋풋한 건축에 대한 열정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같이 한 사람들도 좋았고, 같이 간 장소도 좋았다.

고향에서 대게와 문어를 공수해 온 최진태 건축사, 전날 늦게까지 준공처리를 하느라 밤늦게 합류한 김은주 건축사, 손수 장을 봐온 손양순·김정화 건축사, 이번 여행을 잘 이끌어 준 강미숙 건축사, 버스 안에서 기타를 치며 제대로 된 MT 분위기를 느끼게 한 조형장 건축사, 가족과 함께 참여하여 여행 내내 웃음을 안겨준 김태훈 건축사, 젊은 김기윤 건축사, 목구조 전문가인 도대현 건축사, 김밥을 준비한 이쾌주 건축사, 스케일과 홀더 선물을 준비한 손근호 건축사까지. 11명의 건축사와 함께한 답사기행이어서 더욱 의미 있었던 여행이었다.

아마도 이제 서산과 예산은 나에게 20여 년 전 추억의 장소이기 보다는 2015년을 추억하는 장소로 기억 될 것이다. 볕이 따사로운 봄날이 되면 개심사와 추사고택의 정다움이 떠오를 것이다. 바야흐로 진정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 될 것이다.

 

박미경 건축사 | (주)상지이앤에이 건축사사무소

2015-07-22 15:23:54 수정 박미경 건축사(park@sangji21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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