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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3호 10면    2015-05-20 13:02:28 입력
[수필의 향기] (2) 산복도로 사람들
박봉옥()

 

 
 ▲ 그림. 이종민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효원)

 

산허리를 감고 도는 산복도로에서 집으로 가는 언덕길은 가파르고 구불구불하다. 오르막이자 내리막인 길이라 아무래도 보폭을 평길보다 줄여야 한다. 가다가 아무 골목길이라도 들어서면 미로처럼 펼쳐진 비좁은 길은 구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남의 집 마당을 지나가고 초라한 대문을 비껴가며 멀리 달아나고 있다. 쭉 골목을 따라가면 작은 계단이 나오고 곧 무너질 것만 같은 담이 있고 담쟁이가 엉켜있는 낡고 작은 집들을 더러 만난다낮은 담장들은 도시에서 그 흔한 대립과 모순, 단절을 금세 잊어버릴 수 있게 만든다. 고지대라 골목 어디든지 햇볕은 남국처럼 풍족하게 펼쳐져 있어 햇살이 가득한 골목에 들어서면 그 한가로움에 그저 쉬었다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대개 골목길은 남의 집 문 앞을 지나치게 되어있어 길 쪽으로 난 사각 창문을 통해 방안이 보일 정도로 길과 문은 붙어있다. 손바닥만 한 마당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이런 산복도로변 달동네엔 어림없는 일이다. 집들이 다닥다닥 마주 보고 있고 문을 열면 길이니 이웃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편이다. 적어도 누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쯤은 서로가 속속들이 안다. 빗장을 걸고 사는 아파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다.

  이곳 사람들은 곧잘 정담을 나눈다. 무슨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바삐 살아야 할 일도 없는 탓에 그저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누구라도 며칠째 보이지 않으면 서둘러 안부를 캐묻기도 한다. 간혹 다투는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사소한 일이라 크게 문제 되지 않을뿐더러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골목엔 뛰노는 아이들이 없어 가끔 지나가는 행상이 외치는 소리라도 없으면 너무 적막할 것 같다.

  골목안 사람들의 인생역정은 다양하다. 그들의 삶은 단출하고 초라하다.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아온 노인들은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과 구청에서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에 의존하며 경로당이나 복지관에서 소일하기도 한다. 노구에 잔병을 서너 개 달고 산다. 약값이 보통 드는 게 아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는 사실에 허망함을 느끼고, 멀리 나간 자식들의 안녕을 빌거나 근황을 나누고, 남아 있는 자신들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터놓으며 서로 다독거리며 산다. 외로움을 겪고 살지만, 오직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보안등이 서 있는 저 골목 안집엔 남들이 곤히 자는 한밤에 까꼬막을 힘들게 올라오던 순희 누나의 가족이 살았다. 그녀는 자신의 청춘을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도심지 번화가에서 술과 웃음을 팔아야만 했다. 폐결핵을 앓던 아버지와 동생들의 학비를 책임져야 했으니 가족에겐 성녀와 같은 존재였다.

  ‘콩콩이아저씨가 생각난다. 비염 때문인지 코가 자주 막혀 킁킁거린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밤마다 자갈치나 남포동 일대를 힘들게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노점상의 카바이드 등불을 꽃처럼 밝혀주었다. 아저씨의 아들이 나의 친구이고 예쁜 누나가 반겨 주어 자주 놀러 갔던 추억이 새롭다.

  여기저기에 남해안이나 서부 경남 등 외지에서 일거리를 찾아 올라온 이들이 많이 산다. 배를 타거나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막일도 한다.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온다. 그만큼 삶이 팍팍하다. 요즘도 뜸하지만,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소시민들이 큰돈 들이지 않고 마음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다.

  부모 세대인 노인들은 가난한 시골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구하려 도시를 찾아 이곳으로 들어왔지만, 자식들은 성장해서 거꾸로 동네를 떠났다. 나도 그 축에 낀다.

  근래에 재개발 바람이 일고 있는지 집집마다 재개발에 동의하는 도장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무성하다. 동네 사람들은 재개발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눈치다. 작고 초라하지만, 편히 누울 곳만 있으면 그만이고 우리끼리 잘살고 있는데 웬 소동을 벌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다들 심상치 않은 바람에 어찌 되겠지 하며 크게 연연치 않는 투다. 노인들은 살 만큼 살았으니 크게 바랄 것도 없다는 심정이고,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비록 이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낙후된 동네에선 살 수 없으니 먼발치에서 소식만 전해들을 뿐이다. 세 들어 사는 사람들도 일거리를 찾아 분투할 뿐 별반 관심이 없다.

  동네가 엄청나게 변했다. 유년시절 친구들과 함께 연 날리고 술래잡기하던 밭과 대숲엔 이미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해 저물도록 놀던 골목도 차도로 변해버리거나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나마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꿈을 키우고 위안을 얻던 나지막한 돌담길은 아직 남아 있다. 어려움에 부닥치면 다짐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자리다.

산복도로변 사람들이 힘들고 고된 생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내일을 기약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웃 간의 격려와 어디서나 보이는 바다, 풍부한 햇볕과 같은 자연의 덕분이라 볼 수 있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한밤중 승객을 내리고 버스 종점을 향해 가는 산복도로의 막차처럼 그 삶의 자취들은 아스라이 사라질 게 분명하다. 보이지 않으면 마음에서 멀어지듯이 삶의 애환이 담긴 산복도로의 골목길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늘 밥 묵었나?” 라고 인사를 건네던 이웃집 형이 생각나는 오후다.


 박봉옥 | 수필가

<오늘의문학> 등단

수필집 <수줍은 독백>

문학나눔 <디다> 대표

 

 

2015-05-20 13:02:28 수정 박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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