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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2호 6면    2015-05-20 11:03:19 입력
[타박타박] ㉑ 공간사옥 제2막,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김수근과 공간사옥(空間社屋).

한국건축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상징적인 단어들이다.

서울 종로구 원서동, 우리가 공간사옥이라고 부르는 이 공간은 크게 세 개로 나뉜 건물이 덧대어져 하나의 완전체를 이룬다.

가장 먼저 구 공간사옥(벽돌사옥)은 고() 김수근이 설계한 작품으로 1971년 착공되어, 증축을 거치며 1977년 완공되었다. 김수근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한국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라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건물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어 고() 장세양이 설계한 신사옥(유리사옥, 1996~1997)과 이상림의 한옥(2002)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공간사옥에는 시간적 깊이가 더해졌다. 제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세 개의 건물은 지난 40여년의 세월 동안 한국건축의 상징이 되어온 공간空間의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3, 건축계를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공간건축의 부도공간사옥의 민간매각등은 큰 충격과 함께 우리에게 공간空間의 크나큰 빈자리를 안겨주었다. 많은 이들이 분개했고, 슬퍼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그 곳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다시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건축계의 큰 사건이었던 공간을 둘러싼 세간의 관심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그 사이 주인이 바뀐 공간사옥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다시 태어났다. 150억 원을 들여 건물을 매입한 ()아라리오 그룹의 김창일 회장은 30여 년간 수집한 미술작품 3,700여 점 가운데 선별한 96점의 작품으로, 옛 벽돌사옥을 가득 채웠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바이지만, 김수근의 생전 작업공간을 기념관으로 보존하겠다던 김수근문화재단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획전 없이 컬렉션을 공개하는 곳으로 쓰겠다는 김 회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당초 건물의 리모델링 전반을 명목상 공간건축이 실무를 맡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이 또한 다른 인테리어 업체의 주도하에 진행됐다.

 

▲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난 2, ‘아리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를 방문했다. 구 사옥의 측벽,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空間(공간)’이라는 두 글자가 멀리서 반겨주는, 아직은 공간사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곳이다.

전시는 김수근이 설계한 벽돌사옥에서만 진행된다. 지상5, 지하1층 규모의 건물. 1층은 아트숍 겸 전시장 입구의 역할을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한 개 층씩 오르다보면, 백남준, 마클레이, 신디셔먼 등 43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자그마한 방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건물의 특성상 전시 공간 하나에 한 작가의 작품만이 설치된 곳이 많았다
 

▲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 ⓒ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독특한 공간구조는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기묘한 전시형태를 낳았다. 소극장으로 활용되었던 지하 공간에 설치된 피에르위그의 반짝임 탐험은 이전처럼 바닥에 앉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으며, 이밖에도 남자 화장실 세면대 위에 자리한 더글러스 고든의 영상(면도하는 남자의 모습)을 비롯해, 5층 구석진 곳(경비실 방)을 차지한 개빈 터크의 또 하나의 부랑자’, 원래 주차장이었던 공간에 설치된 권오상의 더 스컬프쳐등 곳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공간과 함께 호흡하고 있는 듯 한 인상을 주었다.

특히 미로처럼 구성된 내부동선은 관람객의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한데, 좁은 계단과 낮은 천장에도 불구, 한옥과 같은 아늑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것이 이곳만의 매력이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의 개관 이후, 대부분의 매체들은 버려진 공간의 재탄생이라 일컬으며, 김창일 회장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김 회장은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 계단에 철제 난간을 설치하고, 냉난방 시설과 전시용 조명을 갖춘 것이 변화의 전부라고 말했으며, 공간의 구조는 물론 생활의 흔적까지 훼손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왠지 모를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건물을 고치는 것은 건축주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김수근의 자취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시장을 나서는 발걸음에, 어쩐지 화려한 작품들 보다는 그 배경이 되었던 오래된 창문과 전시실 곳곳의 전선과 붙박이 선반 등 세월의 흔적들이 더 눈에 밟혔다.

 

▲ 카페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외부 계단실 풍경

 

김수근의 벽돌사옥 옆 장세양의 유리사옥은 미식가들에게 꽤 잘 알려진 레스토랑과 카페가 되었고, 이상림이 증개축한 자 형태의 한옥은 매표소 역할을 담당한다. 카페에 들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지막한 한옥 지붕과 까만 벽돌을 휘감은 녹색의 담쟁이 넝쿨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광을 선물한다. 문득 도심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이곳이 그리 밉지만은 않다.

 

공간사옥의 제2.

지난 40여년 세월의 숨결로 가득 찬 공간사옥을 이전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허물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김수근과 그의 공간사옥은 이제 없지만, 그를 기리는 이들과 또 공간空間을 기억하는 우리들이 있는 한 지금의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공간에 시간의 스펙트럼을 또 한 층 쌓아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이다. 이미 새 주인을 맞이한 공간사옥의 행보와는 별개로, 우리 건축계는 공간공간사옥의 지난 여정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한편, 김수근과 공간사옥이 갖는 한국건축에의 상징성, 그 건축적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5-05-20 11:03:19 수정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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