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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1호 10면    2015-04-21 17:11:18 입력
[타박타박] ⑳ 김중업, 안양에서 만나다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국내 건축계의 거장으로 고() 김중업(19221988)을 꼽는데 이견이 있는 건축인은 없을 터. 풍파가 많았던 고인의 삶을 닮은 탓인지 그의 건물들을 유독 세월의 풍상 속에 많은 위기를 겪었다.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삼일빌딩은 짝이 되었던 삼일, 청계고가를 잃고 어설프게 복원된 청계천의 한 옆에 초로의 노인처럼 서 있으며, 당대 형태주의의 걸작이었던 제주대 본관 건물은 일찍이 그 자취를 감췄다. 원형의 정체성을 유지하길 원한 소유주의 바람으로 2011년 서울옥션을 통해 경매로 나온 옛 한국미술관은 유찰된 이후, 갈 곳을 잃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네 토양은 이토록 가혹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인을 추억할 흔적마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이러한 우려 속에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올해 개관 1주년을 맞은 김중업박물관이다.

 

 

지난 11,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예술공원에 위치한 김중업박물관을 찾았다. 1959년 완공된 제약회사 유유산업 공장 건물 6개동(총면적 4,596m²)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김중업이 설계한 공장 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건축가를 기리는 박물관이 생겨난 것은 처음. 안양시는 2007년 공장부지를 사들여 굴뚝까지 옛것 그대로 살려내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2009, 안양시가 발주한 설계경기를 통해 당선된 최초 계획안은 19개 동의 건물 중 13개를 재활용해 기념관, 전시공간, 작가들의 거주공간 겸 작업실, 커뮤니티센터, 공연장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듬해 8월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유구가 발견되면서 계획이 수정돼 건물 6개 동만 남기고 철거되거나 일부 구조물만 남겼다.

그렇게 옛 연구소 건물은 김중업관’, 보일러실은 공연장과 세미나실이 있는 어울마당’, 창고는 이곳 발굴 조사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한 안양사지관’, 공장건물은 교육과 특별 전시공간인 문화누리관이 됐다.

 

▲ 김중업관

 

김중업관은 명료한 구조체계와 엄격한 비례에 따른 벽면 분할, 투명한 벽체로 요약되는 그의 초기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기둥 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외부로 노출시키고 벽면을 유리로 처리해 투명성을 높였다. 기둥과 기둥간의 간격과 창문과 벽체의 비례는 우수한 조형성을 자랑한다. 리모델링을 담당한 박제유 건축사(.제이유 건축사사무소)는 그렇게 소박한 문틀과 문짝까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해 공간을 구성했다.

전시실로 들어서면, 김중업의 건축세계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그가 남긴 도면과 모형, 세계를 떠돌며 여러 언어들로 남긴 깨알 메모와 스케치가 담긴 건축수첩까지 100여 점의 작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 김중업관 모형전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고인의 큰아들이 박물관에 기증한 나무 모형. 김중업의 작품 중 상당수는 당시 시공 기술이 감당하기에는 까다로운 디자인이어서 안전 문제로 철거되거나 보수공사로 원형이 훼손됐는데, 그 대표작들의 원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중앙마당 전경

 

건물을 나오면, 마당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배영환의 작품 사라져가는 문자들의 정원(2014)’을 마주한다. 유유산업 공장의 일부였던 스물네 개의 기둥을 사용하여, 소실되는 것들을 기리는 작업으로, 유적처럼 뼈대를 드러난 채 우뚝 솟아있는 기둥의 잔재는 마치 세상 떠난 건축가를 기리는 듯하다.

열주를 감싸고 있는 거북 귀자 모양의 정원은 눈주목으로 조성한 것으로, 고려의 절 안양사의 규모를 확인시켜준 안양사 귀부와, 서로 다른 디자인의 거북 귀자를 암벽에 새긴 삼막사의 삼귀자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또 여덟 개의 황금 기둥에는 사라졌거나, 현재 거의 쓰이지 않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자가 기록되어 있다.

 

▲ 어울마당

 

어울마당은 건물 뒤편에 있는 공장굴뚝과 함께 유유산업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로, 옛 것에 대한 추억과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일러실로 사용했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부속건물을 증축한 것으로, 이곳에서는 전시, 공연, 강연 등의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 안양사지관과 안양사지터

 

가장 안쪽에 자리한 안양사지관은 안양의 뿌리와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2008~2011년까지 3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된 고려시대 안양사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발굴을 담당했던 임정현 연구원(한울문화재연구원, 고고학자)은 그동안 문헌에만 기록되었던 안양사의 실재 그리고 안양사의 가람배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작업에 큰 의미를 두었다. 전시실 내부에는 당시 발굴된 출토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양의 근현대 자료와 과거와 미래를 표현한 영상물을 접할 수 있다.

 

▲ 문화누리관

 

문화누리관은 김중업관, 안양사지관과 연계한 기획전시, 교육체험 프로그램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옥상정원 및 카페, 아트샵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됐다.

내부벽체들을 많이 철거했고, 큰 방들로 공간구성을 했다. 특히 공장스럽지 않은 외관을 위해 디자인 요소들을 적절히 삽입한 것이 특징인데, 2층 입면에는 국전 조각가 박종배의 모자상과 파이오니아상의 작품 등이 설치되어 문화유산으로서 보존가치를 더했다. 건물 요소요소에 남아있는 김중업의 디테일을 찾는 재미 또한 건물에 의미를 더한다.

 

김중업 박물관의 김연수 관장은 김중업의 건축 철학과 정신을 이어받아 만든 김중업 박물관을 근현대 건축물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박물관으로 키워내겠다는 포부로 지난 1년간 건축박물관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덕분인지 실제로 김중업 박물관의 관람객은 개관 초 기대치 보다 2만 여명이 많은 88천 여명을 돌파했다.

 

김중업 박물관의 지속적인 성장은 건축물 재생의 가치를 돌아보게 할 터. 최근 건축계에 불고 있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열풍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중업 박물관이 한 건축가의 생애를 기념하는 공간을 넘어, 건축재생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는 공간으로서, 척박한 우리네 토양에 깊숙이 뿌리내기를 바란다.

 

2015-04-21 17:11:18 수정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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