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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0호 10면    2015-03-17 16:39:45 입력
[건축을 보다] ㉗ 좋은 건축사는 ‘명의’다
조대근 원장(yaaksan@hanmail.net)

 

치료보다는 생활입니다

한의원 입구에 걸어놓은 문구이다. 한의원에 와서 치료만 받을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생활 속에서 병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 그것을 고칠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환자들을 보면 그들의 생활환경과 사고방식이 병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생활환경은 의식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제 내가 한의사로서 경험한 것 중 그 어떤 치료보다 공간의 영향이 컸던 사례를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굉장히 심한 아토피와 비염에 시달려서 여러 가지 치료방법을 다 거쳤으나 별 진전이 없었던 아이의 이야기다. 나에게 와서 이런저런 치료를 해나가고 있던 중 생활하고 있는 환경을 살펴 문제점은 없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환아의 어머니께 허락을 구하고 어느 날 집을 방문했다. 집안에 들어서서 둘러보기를 5분도 되지 않아 창문을 열고 참았던 숨을 내뱉어야 했다. 곰팡이 냄새가 너무나 심했다. 책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오래된 책이 많았다. 책을 정리하고 보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서 대여할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집안 바람의 길을 되살릴 수 있도록 창문개폐와 가구배치에 관하여 조언하고, 침실의 선정과 방향도 조언을 했다.

이 환아와 같이 만성병이나 면역질환의 경우는 생활공간을 조금 조정해서 자연스런 흐름만 회복하면 병의 원인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커피맛이 공간의 기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체험한 이야기다.

나는 한약보다 식생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커피를 나만의 방법으로 연구하면서 환자들과 커피 연구모임을 하고 있다. 거기에 나오는 한 부부에게 내 방식의 핸드드립을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같은 사람이 같은 원두, 같은 도구로 내린 커피가 장소에 따라 맛이 달랐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그러면 공간의 문제인가 싶어서 그분들의 집에 가보았다. 기운을 살펴보니 커피를 내리는 공간인 주방 기운이 붕 떠서 안정적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거실의 기운이 좋은 곳을 찾아 화분을 놓았더니 좋은 기운이 확장되면서 주방의 기운도 점점 안정되었다. 이렇게 집안의 곳곳에 화분배치의 변화를 주었더니 집주인들이 호흡도 깊어지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이런 안정된 환경에서 편안한 사람이 내린 커피 맛도 당연히 좋아졌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평소 더치커피가 핸드드립커피에 비해서 기운이나 맛이 떨어진다고 느꼈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평소와 다른 위치에서 더치를 내려 보니 기운과 맛이 핸드드립커피와 대등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있었다. 그동안 더치 기구를 놓기 편한 구석자리에 놓고 쓰면서 좋은 커피를 원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우연이지만 기운이 안정되고 좋은 공간에서 커피를 내렸으니 기운과 맛이 좋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같은 공간 안이라도 그 작업에 적당한 위치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이와 같이 커피도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 음식, 사람도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그 물건이나 일의 목적에 맞는 공간을 찾는 것은 도구만큼이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세 번째는 차를 인연으로 만난 눈 맑은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다. 오래전에 스님이 계시던 절은 고즈넉하고 안정된 분위기로 공부하기도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의 사형이던 주지스님이 요사채(寮舍寨)를 지으려고 하였다. 스님은 요사채로 인해 절의 기운의 망가진다며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절을 떠났다. 결국 요사채가 세워졌고, 나중에 주지스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면서 후회하셨다고 한다.

나는 실제로 그러한지 느껴보기로 하였다. 요사채를 배제한 채로 절을 느껴보니 아늑하고 안정된 기운이었다. 반면 요사채가 있는 상태에서 느껴보니 요사채가 좋은 기운의 흐름을 막아 붕 뜨고 불안하였다. 요사채를 뜯어내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정부 돈을 지원받아 지었기에 함부로 헐 수도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한의원 앞에 건물 두 동이 들어섰다. 건물이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한의원 안의 기운이 변화하는 것이 느껴졌다. 건물도 서로 기운을 교류하는구나 하는 것을 이때 실제로 느꼈었다.

 

어떤 공간이나 지역에 불필요한 건축물이 들어서면 전체의 분위기를 망친다. 모임에도 불필요한 사람이 들어오면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과 같다. 건축 후 쉽게 바꾸기 어려우니 인테리어보다 더 중요한 요소인지도 모른다. 단체장, 건축행정가, 도시공학자, 정치인의 몫인지는 모르지만 심사숙고해야 할 일이다.

 

이와 같이 건축은 사람의 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병자가 있으면 반드시 원인으로 주거환경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 건축주나 건축가는 건물이 주변에 미칠 영향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의사는 이미 생긴 병을 치료하는데 치중하기 쉽지만, 건축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예방할 수도 있고, 많은 사람에게 병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까.

 

얼마 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라이 오토에 관한 기사를 봤다. “좋은 건축가는 사회사업가라는 그의 말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한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좋은 건축사는 명의다.”

 

조대근 원장 | 약산한의원

2015-03-17 16:39:45 수정 조대근 원장(yaak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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