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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1호 13면    2014-06-18 16:03:28 입력
[타박타박] ⑭ 아주 오래된 부산, 그 참 멋에 빠지다
ab제24차 부산도시건축시민투어, 남항 시장일대 재조명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우리는 흔히 근대도시 부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말의 속뜻을 살펴보면, 근대기의 도시구조 및 개발계획 등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심구석구석 자리한 근대건축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근대의 흔적이 가장 많이 산재한 곳은 아무래도 원도심 일대일 터. 최근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투어코스 등이 개발됨에 따라 일대의 근대건축을 재조명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남으로써, 근대건축에 대한 시민의 인식도 조금씩은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지난 614, 진행된 제24차 부산도시건축시민투어(주최 부산시, 주관 사.부산국제건축문화제)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바다내음 물씬한 시장 건축투어를 주제로 한 이번 투어는 역사적 흔적을 담고 있는 남항 시장일대를 재조명코자 기획됐다. 40여명의 투어단은 홍순연 박사(상지건축부설연구소 연구원)의 해설에 따라 자갈치건어물시장, 영도대교, 남항동 창고군 등을 둘러보며 아주 오래된 부산을 마주했다.

 

▲ 자갈치건어물시장 초입

 

자갈치건어물시장

투어단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자갈치건어물시장. 일제강점기 당시 어업연합회로 출발한 곳이다. 남빈매축공사를 통해 매립이 이루어지고 영도대교가 개통되던 193411월부터 상가조성이 시작됐으며, 해방 후에는 수산업협동조합으로 발족했다. 현재는 상가번영회를 중심으로 240여개의 점포가 보존되어있는데, 대부분이 적산가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홍순연 박사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입면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지만 내부구조는 건립당시와 동일하다. 눈여겨 볼 것은 목구조인 적산가옥의 화재발생시를 대비한 벽체구조인데, 건물과 건물사이에 설치된 벽돌 벽 구조가 방화벽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얇은 목조판을 겹겹이 붙여 만든 비닐판벽과 해풍에 대비한 중문구조, 셔터창고 역할을 한 아마도(あまど) 등 근대건축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했다.

 

   
▲ 자갈치건어물시장 적산가옥                 ▲ 방화벽 역할을 하는 벽돌벽 구조

 

영도대교와 점바치골목

건어물시장을 따라 걸어 나오면 영도대교와 점바치골목이 보인다. 점바치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곳으로 일대의 점집이 70여개에 이를 정도로 성행했다고 한다. 영도대교의 증설로 지금은 3곳 정도만 남아있을 뿐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숨은 사연을 접한 탓인지 다시금 눈길이 갔다.

 

▲ 점바치골목의 흔적

 

골목을 지나 영도대교가 보이는 트인 광장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북적거리는 인파가 눈에 띈다. 지난해 영도대교가 다시 도개를 시작한 이후 연일 같은 풍경이다.

영도대교는 19324월 착공해 193411월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 연육교(連陸橋, 길이 214.7m, 18.3m)이다. 당시 영도에는 조선소를 비롯한 군수산업공장이 들어섰고 도선만으로는 원자재 및 생산제품 운송이 어려웠는데, 영도대교는 이러한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다.

홍 박사는 영도로 출퇴근하는 인구만도 하루 7만 명에 달했다. 대교 건설 전 유일한 교통수단은 배였는데, 좁은 배에 무리하게 사람들을 태우다보니 배가 뒤집히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또 영도대교 건립이 확정되기 전, 일대 전체를 매립하는 방안과 당시 유행하던 영국식 케이블카형 다리를 건설하는 방안 등이 함께 제안됐다는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 영도대교 도개행사 (사진제공 사.부산국제건축문화제)

 

건설 당시 영도대교는 일 6회 도개하여, 부산의 명물로 자리했다. 그리고 19669, 증가하는 차량통행으로 인해 도개기능이 멈췄다. 그로부터 47년여의 세월이 흐른 2013, 부산시는 영도대교 복원사업을 마쳤고,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도개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홍 박사는 해체복원과정에서 과거 전차용 철로와 침목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아스팔트를 부어 다리를 고정시켰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도 비석과 철골, 도개 관련 장치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흔적들이 많이 나왔다, 향후 유물들은 박물관 등에 전시해 더 많은 시민들과 공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남항동, 봉래동 창고군

점심식사 후, 영도대교를 건너 남항동에 이른 투어단은 창고군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 걸음을 재촉해 간 곳에는 오랜 세월의 풍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창고건축물이 있었다. 1930년대 후반 남빈매축에 맞춰 형성된 창고군은 목구조에 벽돌을 쌓아 만든 경사지붕형태인데, 지금은 대부분의 외벽이 미장된 상태이다.

 

▲ 남항동 창고군 (사진제공 사.부산국제건축문화제)

 

당시의 표준화벽돌(가로 폭 23cm)은 현재와는 그 크기(가로 폭 19cm)부터 청음, 강도, 벽돌색 등 여러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미장이 되지 않은 날 것의 건축물에서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창고천정에 사용된 근대식 목조트러스 구조인 킹포스트와 아치형의 문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 적벽돌을 사용해 지은 창고건축물        ▲ 창고 천정의 목조트러스 '킹포스트'

 

부산삼진어묵박물관

창고군을 벗어난 투어단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부산삼진어묵박물관에 이르렀다. 삼진어묵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일본에서 어묵제조 기술을 배워 온 박재덕 씨가 영도봉래시장 입구에 삼진식품을 설립한 것이 그 시초다.

지난해 삼진식품의 옛 공장을 리모델링한 부삼삼진어묵박물관은 1층에는 어묵매장과 수제공장이, 2층에는 어묵체험전시관이 마련되어있다.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고 부산어묵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고자 했다는 전시관이 설립목적이 눈에 띄었다.

 

▲ 부산삼진어묵박물관

 

더 빠르게, 새롭게 또 화려하게. 시시각각 변해가는 화려한 도시의 장막을 걷어내면 이렇듯 더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도시의 참 멋이 자리하고 있다. 화려한 빛에 가려 보지 못했거나 이미 익숙해져버린 탓에 무뎌진 것이라면, 지금부터라도 관심어린 눈으로 도시곳곳을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지나친 건물에, 다리에 수년의 역사가 서려있고, 진정한 부산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멋과 가치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한층 더 성숙한 부산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도시, 부산을 만드는 해법은 분명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014-06-18 16:03:28 수정 방주연 기자(evergreen8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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