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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74호 13면    2013-11-18 17:41:55 입력
[건축을 보다] ⑱ 집이 몸을 담고 나를 읽는다



요즈음 전원주택을 짓는 사람은 황토방 하나쯤 짓는 것을 자랑으로 안다
. 그러나 조부모님이 살았고 이어 부모님이 사시는 우리 집은 애초에 황토방이었다. 바닥은 구들을 놓아 황토로 덮고 벽은 황토로 다진 블록을 쌓고 지붕은 서까래를 놓고 그 틈을 황토로 메운다. 황토방을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불이다. 오래된 황토집일수록 규칙적인 군불이 필요하다. 불을 지피면 황토벽은 갈라진 틈을 메워 주고, 온기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고향집에 가면 늘 군불을 때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래된 구들목은 집의 관절을 풀어주는 게다. 아니 늙은 부모님의 피곤함을 풀어주는 것일 게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집의 수명이 짧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고갯마루에서 보이는 지붕, 수직적인 연기가 있는 한 부모님은 여전히 관절을 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슬픔은 아직 덜할 것이다. 모두가 몸을 담는 황톳집 덕택이다. 집은 우리의 몸을 담고 우리의 추억을 읽고 있다. 꿈꾸고자 하는 이들을 끌어안아 준다. 세대 간의 연결고리가 추억, 곧 꿈이다. 추억은 특히 구석을 잘 기억한다.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며 잠들고 싶은 구석을, 내밀한 몽상을 즐길 수 있는 구석을.

추억의 한구석을 지배하는 것이 나에게는 장판이다. 구석진 것이 오히려 몽상을 일으키는 좋은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불을 먹고 사는 장판은 육()과 영()이 합쳐진 장소이다. 바닥이 좀 고르지 못하지만 형제간, 부모 간에 몸을 비빈 공간이자, 연기의 영혼이 깃든 공간이다. 장판이 내게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장판 밑에 동전과 지전(紙錢)이 있었고, 어머니께서 자식의 용돈을 위해 감춰둔 비자금이 여기에 있었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장판이 지갑이 되었던 황토방, 이제 성공 못한 자식이 부모를 위해 몸을 갚아드리는 장소가 되고 있다.

 

나의 방에는 / 시꺼멓게 낡은 장판이 지갑이었다.
장판 지갑은 불을 먹고 살았다. / 부푼 공기가 가죽의 찢어진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구겨진 지폐 / 구들구들 향내를 풍기며 팽팽해 졌다.
어쩌면 돈이 나를 냄새 맡고 있었는가. 

어머니 생신날, 아궁이에 불 지피며 / 구들목 장판 속으로 돈을 넣는다.
넉넉히 드리고 싶지만 가난한 마음 / 그랬었구나, 어머니는
일생, 주머니 속에 장판 지갑을 가지고 계셨다.


- 졸시 <장판 지갑> 부분

 

비록 누추하지만, 몸이 잊히지 않는 그런 옛집일수록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조부모와 부모님과 나의 세대, 3세대는 지속될 것이다. 우리가 꾸는 꿈을 데려가는 집은 화려한 외모를 싫어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바깥벽들이 온통 검지만, 여기에 행복한 가난이 숨어 있다. 불냄새가 배인 몸에서 나온 추억들은 방안의 황토 빛깔을 어느덧 닮아 있다. 여기에서 시원(始原)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아늑함은 대대로 내려온 추억이 쌓인 퇴적물이기에 가능하다.

너무 거창하고 화려한 외관을 지닌 집은 아늑함이 없어 보인다. 안락함만 있고, 몽상이 없어 권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크기가 같고 규칙적으로 배열된 도시의 구멍 속에서는 내밀함이 모일 틈이 없다. 각진 네모의 집에서는 둘레가 사라지고 상상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일찌감치 이웃과 교감하는 삶들이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만다. 콘크리트 벽들만 가득한 집이 세상을 점령할 때 마음의 오염도 점점 심화될 것이다. 꿈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집이어야 추억들에게 색깔을 입힐 수 있을 것이다. 곧 울림을 줄 수 있는, 몽상을 불러일으키는, 몸을 비빈 온기가 담긴 집이 많아질 때 한층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다.

손창기 시인, 경북 대동고 교사,
2003 현대시학
으로 등단,
시집 달팽이 성자저자


 



 

2013-11-18 17:41:55 수정 손창기(jangoyes@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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