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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9호 14면    2013-06-19 17:03:39 입력
[건축, 그 출발점에 서다] ㉔ 부산과 기억
ab강영주 | (주)에이도스 건축사사무소

 

관대하신 쿠빌라이시여, 부질없겠지만 높은 보루에 에워싸인 도시 자이라에 대해 묘사해 보겠습니다. 이 도시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길들의 계단수가 얼마나 많은지, 주랑의 아치들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은 어떤 양철판으로 덮여 있는지 폐하께 말씀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말씀드리는 게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로등의 높이와 그 가로등에 목매달아 죽은 찬탈자의 대롱거리는 다리에서 땅까지의 거리 사이의 관계, 그 가로등에서 앞쪽 난간으로 묶어놓은 줄과 여왕의 결혼식 행렬을 장식했던 꽃 줄 사이의 관계, 그 난간의 높이와 새벽녘 간통을 저지르다 난간을 뛰어넘는 남자의 급하강 사이의 관계

(중략)

도시는 기억으로 넘쳐흐르는 이러한 파도에 스펀지처럼 흠뻑 젖었다가 팽창합니다. 자이라의 현재를 묘사할 때는 그 속의 과거를 모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의 과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도시와 기억3), 이탈로 칼비노 / 민음사

 

2006, 건축을 막 접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반복해온 물음이 있다.

부산다움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늘 제자리였다. ‘독특한 경관요소가 있으나 획일화되거나, 개발에 의한 파괴’, ‘근대사를 견뎌낸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나 상실등이 부산다움의 단편과 그 단편조차 묵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부산다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고민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이 부산은 이미 많이 변했고, 나 또한 졸업 후 실무를 시작한 지 2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가벼이 여겨왔던 이 물음이 요즘은 조금씩 무겁게 느껴진다.

실무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렇게 해 주세요이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사진을 찾아와 이 유럽풍의 전원주택처럼 설계해주세요’, ‘이 잡지 표지와 비슷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거나 그냥 가장 값싸게 빨리 지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이 건물이 어디에 지어지는지,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건축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도 보기 전에 건축사에 대한 요구사항이 이미 정해진 것이다.

건축주들에게는 이미 넘쳐나는 정보와 이미지들로 인해 좋음, 아름다움, 근사함이란 것들이 유행처럼 보편화되어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부산이라는 지역성은 철저히 배제되어가고, 가치나 그에 따른 욕망이 획일화되면서 부산사람들만의 가치, 욕망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듯하다. - 이는 부산뿐만 아니라 모든 도시가 조금씩 닮아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이렇게 지어진 건물로 인해 이전의 공간은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공간들은 대개 같은 패턴과 통찰의 반복으로 생성되어 그전의 장소에 대한 아주 사소한 실마리조차 남겨두지 않는다. 그곳을 떠올릴 만한 단서를 잃은 장소는 아마 아주 짧게, 새로운 사건들만을 때때로 일으키고, 또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쉽게 잊혀 질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아주 서서히 반복되어 장소를 잃고 나면 새삼 두려워질지도 모르겠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캐롤이 말한 이빨이론처럼 말이다. - 캐롤은 이렇게 말한다. ‘너 그 기분 아니? 네 이빨이 모두 아-주 천천히 빠지게 되면, 넌 알아채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빨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고, 그 때 그것들이 정말 없어진 걸 알게 되는 거지. 그래, 이것도 비슷한 거야.’ -

기억하는 것이 잊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기에 기억될만한 것을 남겨주는 것 또는 기억할 수 있게 남겨두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기억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산다움을 끌어갈 수 있는 조그만 힘이 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소리를 내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수동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가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부산의 단편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품는다면 훗날, 우리가 머물렀던 이 시간, 이곳이 우리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꼭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예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을 수 있을 부산으로.

부산이 계속해서 추억할 수 있는 도시가 되기를 바라며… 

강영주 | (주)에이도스 건축사사무소

2013-06-19 17:03:39 수정 강영주(yjkang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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